"지금과 같은 남북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찍은 거라서… 저희도 뉴스를 더 열심히 보게 되네요." 지난달 만난 윤종빈 감독이 8월 개봉하는 자신의 영화 '공작'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달 새 남북한 관계가 급변하자 영화계가 덩달아 술렁이고 있다. 남북한 냉전(冷戰)과 이념 대결을 소재나 주제로 삼은 영화가 올여름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곧 회담을 갖는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작을 시작했던 만큼 "현실과 영화가 너무 동떨어져 보일까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영화계에 돌고 있다. 일부에선 개봉 일을 늦추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 개봉 날짜를 조정해 보겠다는 판단이다.

안기부 출신 공작원 얘기를 그린 영화‘공작’. 작년 2월 촬영을 시작한 작품으로 현재와 같은 남북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성됐다.

8월 개봉 예정인 영화 '공작'은 안기부 첩보요원 흑금성(황정민)이 1997년 북풍(北風) 공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는 한국형 첩보 영화. 냉전 시대에 스파이로 살아야 했고 뜻하지 않은 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흑금성을 통해 이념 대결이 빚어지는 비극을 잘 그렸다. 비슷한 시기 개봉 예정인 '인랑'(감독 김지운)도 반통일 테러단체가 한반도를 혼돈으로 밀어 넣는 가상의 미래를 그렸다. 통일에 반대하는 국가 정보기관 '공안부', 반통일 무장테러단체 '섹트', 경찰 조직 '특기대'가 격돌하는 얘기다. 이 영화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 측은 "남북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지금 상황이 반가우면서도 앞으로 남북 관계가 또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배우 하정우가 제작자로 나선 영화 'PMC'(감독 김병우)는 아예 판문점을 배경으로 한다. 판문점 지하 30m 아래 벙커에서 벌어지는 비밀작전 얘기다. 폐쇄된 공간에서 빚어지는 심리 갈등이 영화의 중심축이라고 알려져 있다. 올해 하반기 개봉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화 '스윙키즈'(감독 강형철)는 6·25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남한군에게 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감금된 북한군 포로 얘기다. 이념 대립을 춤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통일 한국의 모습을 암울하게 그린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도 곧 영화로 나온다. 덱스터 스튜디오가 판권 계약을 맺고 영화화에 들어갔다. 제작사 측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상황과 엇박을 빚지 않고 메시지를 담을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