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논설위원

법원 내분(內紛)을 바라보는 검찰은 표정 관리 중이다. 10건 넘게 고발이 들어왔으니 뭐든 하고 싶은데, 대법원장이 "고발 검토 중"이라고 하니 금상첨화 아닐 수 없다. "법원이 성역이냐"고 하는 검사가 늘었다. '이런 혐의는 적용 가능할 거 같다'며 귀엣말로 속삭이는 검사들도 있다. 특별수사팀 꾸릴 거라는 소문도 들린다. 판사 뇌물 수수 비리라면 몰라도 '사법행정권 남용' 같은 법원 내부 다툼에 검찰이 칼을 들이댄 적은 없었다. 검찰로선 새로운 수사 영역 개척이다. 신작로는 처음 낼 때만 힘들지 한번 닦아 놓으면 수시로 이용하게 된다.

수사 공화국이 됐다고들 한다. 하루도 압수 수색, 구속, 체포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다. '적폐 청산'이 빚은 풍경이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세관, 출입국 당국 등 존재감 크지 않던 수사기관까지 뛰어들었다. 꼭 적폐가 있어서만 수사하는 게 아니라 수사기관이 찍으면 적폐가 되기도 한다. 수사는 과잉이고, 법 적용은 무한정 확대되며, 처벌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직권남용'이 바로 그런 경우다. 검찰이 이 죄 적용을 남발하자 나비효과처럼 고소·고발이 급증했다. 재작년 공무원 3007명이 고소됐는데 작년엔 5920명, 2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고발은 474명에서 1959명으로 4배가 됐다. 고발당한다는 건 죄가 있든 없든 검찰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연간 공무원 8000명이 행여 적폐로 찍힐까 불안에 떨며 검찰 처분만 기다리게 됐다.

경찰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소방서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29명이 희생됐다. 소방서장은 희생자가 많았던 2층 여자 사우나의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고, 허둥댔다. 경찰 말대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능하다'고 처벌한다는 건 지나친 처사다. 생명을 걸고 화재와 싸우는 소방관들에게 '앞으론 구조 못 하면 감옥 갈 각오 하라'고 할 건가. 이 사건으로는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고 혼자 빠져나왔다는 혐의로 여자 사우나 세신사도 재판받고 있다. 도덕적 비난이야 받아 마땅하지만 '양심 불량' 문제까지 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과잉이다.

'물컵 폭행'으로 시작된 대기업 총수 일가 문제는 공분을 자아낸다. 수사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수사라는 것이 갈수록 수사기관들 힘자랑으로 변해가고 있다. 관세청은 현장 실습 나가듯 떠들썩하게 압수 수색을 했다. 벌써 5차례다. 출입국 당국에 피의자 소환용 포토라인이 쳐진 건 처음 봤다. 경찰은 물컵 던졌다고 구속하겠다고 했다. 어떤 재벌 수사에서도 '삼족(三族)을 멸한다' 식으로 일가를 싹쓸이 사법처리한 경우는 없었는데,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1년 6개월 넘게 수사받는 대기업도 있다. 검경이 돌아가며 10번 이상 압수 수색했고, 거기서 우연히 찾아낸 문건으로 별건(別件) 수사 가지치기가 이뤄졌다. 기업들은 '공권력'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새삼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지금은 '적폐 청산'이란 명분을 앞세워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그 명분은 희미해지고 모래폭풍도 가라앉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수사기관의 과잉 행태가 사라질까. 권한 남용에 익숙해진 그들이 움켜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길 기대하는 건 기적을 바라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법원도 '과잉'에 동참하고 있으니 이젠 제동 걸 방법도 없다. 괴물 수사기관들의 발톱은 직권남용 공무원, 갑질 재벌, 양심 불량 시민 쪽으로만 향하진 않을 것이다. '적폐 청산' 이후가 더 걱정스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