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산하 반(反)독점국 조사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3사의 중국 법인에 예고 없이 들이닥쳐 조사를 벌였다. 중국 당국은 이들 3사가 가격 담합 등의 반독점 위법 행위를 했는지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위법으로 판명되면 최대 80억달러(약 8조6000억원)의 과징금이 매겨진다. 위법 판정이 아니라도 조사 자체만으로 우리 업체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대(對)중국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중국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를 정조준하고 나선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崛起)'를 산업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내걸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총지휘자는 시진핑 주석이다. 200조원 규모 국가 자금을 퍼붓고 해외 기술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나서 2025년엔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야심 찬 계획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세계 메모리 시장의 75%를 장악한 한국 업체들이다. 사실 중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견제는 시간문제였다.

반도체는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산업 분야다. 조선·자동차·IT 등 다른 주력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인공지능·드론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선 중국에 뒤처진 지 오래됐다. 반도체 한 품목이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한국 전체 기업 영업이익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한국 경제 자체가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게 하나 남은 반도체마저 중국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슨 대책과 돌파구가 제시돼야 한다. 지금 한국 정부의 어느 누가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위기를 고민하고 있나. 산업전략과 경쟁력 정책은 사라지고 전(全) 정부가 온통 '소득주도 성장'에만 매달려 있다.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들이닥친 날도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긍정적이라는 홍보에 전력했다. 공무원들은 정권 바뀌고 감옥 가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며 몸 사린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