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다음 날 인수인계서 단 두 장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대 커뮤니티가 이념·세대 갈등으로 갈라져 우리나라 축소판 같았죠. 살얼음 걷는 기분으로 하다 보니 1년이 휙 지나갔네요. 이제 많이 안정을 찾았다 생각이 듭니다."

오는 31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창의성과 유연성을 갖춘 여성들이 다가오는 디지털 환경에도 잘 적응할 것”이라며“이대가 여성들이 과학·기술·수학에 취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판을 바꿔보겠다”고 말했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오는 31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본지와 가진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했다. 김 총장은 '정유라 입학 비리 사태'가 불거진 작년 5월 이대 131년 역사상 처음으로 학생 등 구성원 모두가 참여한 '직선제 총장'으로 선출됐다. 이대는 2016~2017년 정유라 사태뿐 아니라 '평생단과대 도입'에 반대한 학생들이 86일간 본관을 점거해 경찰이 투입되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김 총장은 이어 시민 참여단 400명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로 2022학년도 대입제도를 정하려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입을 어떻게 여론에 맡기느냐. (정부가) 교육 문제를 일생 고민하는 전문가 집단을 믿고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입 공론조사 방식은 "마음이 앞선, 거친 방법"이라며 "여론을 통할 일도 있지만, 대입 문제는 전문가들이 미래 비전을 갖고 지혜롭게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론조사 방식으로) 대학과 학부모가 부딪치게 생겼다. 왜 이런 판을 가져가는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 참여단 결정을 대학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결과를 지지하는 학부모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이런 문제는 대학들이 앞장서게 하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했다.

김 총장은 또 "상위권 대학들은 '탁월함'을 추구하며 학생들을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일당백'으로 키워내야 하는데 (정부의) 10년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대학들 재정난이 심각하다"며 "교육의 품질을 높여야 할 시대에 100원 주고 500원짜리 만들라고 하면 어느 순간 안 먹힌다"고 했다.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학생 교육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1학년 필수인 세미나 수업을 모두 체육 수업으로 바꿔보겠다"고 밝혔다. AI(인공지능) 시대엔 창의성·공감·배려 등을 길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신체 활동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대 모든 학생이 코딩 등 디지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 인턴십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 초 성신여대가 남녀 공학 전환에 대해 구성원들이 투표를 하는 등 남아 있는 7개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 대학가에서 이슈다. 하지만 김 총장은 "여대는 분명히 필요하다. 이대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투 등 여성 전체 문제에 대해 똑똑한 여성 한두 명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면서 "이대 같은 여대가 그 사람들이 기댈 이론이나 신념 체계를 만들어 내는 '집단 지성의 처소(site)'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적 역량이 큰 여성일수록 (남녀공학에서) 더 큰 좌절감을 겪는다"면서 "똑똑한 여성일수록 역량을 200% 발휘할 수 있는 여대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현상'에 대해 김 총장은 "사교육비, 집값 등 문제로 젊은이들이 '생명의 경이감'을 느껴볼 기회도 없이 포기하고 있다"면서 "도저히 비교 대상이 아닌 가치들이 비교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