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을 참관한 한·미·영·중·러 5국 기자단 30명은 이날 오후 11시 30분쯤 숙소가 있는 원산으로 돌아오는 특별열차 안에서 미·북 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접했다.

기자단이 크게 놀랐고, 열차에 있던 북측 관계자들도 술렁였다. 일부는 격앙된 모습도 보였다. 윌 리플리 CNN 기자는 "북측 인사들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며 "그들은 '이 상황이 양국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며 그래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6월 12일이 아니더라도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듯 들렸다"고도 했다. 취재진이 미·북 회담 취소 관련 질문을 하자 북측 관계자는 "일단 호텔에 도착해서 뉴스를 보라"고 했다.

앞서 원산역에서 12시간 열차를 타고 이날 오전 6시 15분쯤 길주 재덕역에 도착한 국제 기자단은 바로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이동했다. 가는 내내 울퉁불퉁한 흙길이 이어졌다. 인적은 없었고 가끔 흰색 페인트칠 된 단층 집이 여러 채 보였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듯했다.

풍계리行 특별열차 내부 - 한·미·영·중·러 기자단 30명이 23~25일 북한 원산과 풍계리 핵실험장을 오갈 때 탑승한 특별열차 내부 전경. 객실(왼쪽)에는 간이침대와 벽걸이형 에어컨 등이 구비돼 있고, 생수와 음료 등이 비치돼 있다. 기자단이 밖을 볼 수 없도록 모든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쳐졌다.

핵실험장 갱도 폭파·폐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2-4-3번 갱도 순으로 진행됐다. 북측은 폭파 전 갱도 앞까지 기자단의 접근을 허용했다. 갱도 폭파 후 취재진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 맞느냐"고 묻자 "여러분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 아니냐"고만 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행사 내내 "(풍계리 핵실험장에) 방사능 오염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전에 방사능 측정기를 압류한 북한은 기자단에 방호복 없이 안전모만 지급했다. 점심시간에 한국 기자가 제비집을 가리키며 "제비가 방사능에 민감하다던데…"라고 하자 북측 관계자가 "그만큼 방사능이 없다. 개미도 방사능에 민감한데 엄청 많다"고 했다. 3번 갱도 인근 개울에서는 북한 조선중앙TV 기자가 한국 취재진에게 "(시중에 파는) '신덕샘물' pH(수소이온농도)는 7.4인데 이 물은 pH 7.15로 마시기 더 좋다. 방사능 오염이 없다"며 개울물을 마셔 보길 권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날 원산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저녁 식사로 전날 풍계리로 향할 때처럼 약 10가지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등 기자단을 후하게 대접했다. 닭안심찜, 뱀장어구이, 해주비빔밥 등이 제공됐다. 다만 이번에도 열차 내 모든 창문을 커튼으로 가려 밖을 전혀 볼 수 없도록 했다.

미·북 회담 취소에 따라 신변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자단은 25일 오전 숙소인 원산 갈마호텔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한국 취재진이 노트북 컴퓨터를 켜 회담 취소와 관련한 기사를 검색하자 북측 관계자들이 모니터 앞에 모여들기도 했다.

기자단은 당초 이날 오후 북한이 관광지로 내세우는 원산 갈마지구를 견학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북측이 돌연 취소했다. 북측은 기자단에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오후 2시부터 약 2시간 40분 동안 호텔에 대기하라고 지시하며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외신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북측이) 호텔 내에 머물되 창밖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가 인근 지역을 다녀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오후 6시 30분에는 인터넷이 끊겼고 이어 유선전화 사용도 불가능해졌다. 기자단은 26일 오전 11시 원산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한다. 한국 취재진 8명은 오후 9시 40분(현지 시각) 항공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