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영원한 '츤데레' 감우성
"나는 지금보다 더 늙고 더 낡아져야 좋은 배우"
"은둔은 생존의 기술… 작품 끝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앓는다"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함께 한 김선아, 순수예술인에 가까워"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어른의 연기를 보여준 감우성의 그윽하고 날카로운 얼굴.

감우성을 만났다. 10년 만이었다. 배우 김수로와 영화 ‘쏜다'를 찍고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그는 39살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고 고백했다. 학창 시절 달려드는 버스에 뇌가 날아갈 뻔한 경험 이후 촬영장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탓이다.

당시에 그는 휴대폰 메인 화면에 ‘내게 남은 시간은'이라는 글자를 새겨두었다. 삶의 스톱워치는 우리 손에 없기에, 우리는 ‘내게 남은 시간은'이라는 문장의 말미를 스스로 완성할 수 없다. 낙관주의자가 되든 염세주의자가 되든 선택할 뿐.

49살인 감우성은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50살에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한 남자를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그렇듯 현실의 감우성은 젊지도 늙지도 않았다. 단지 잘 낡아 있다. 그에게서 길이 잘든 가죽 가방 같은 감촉이 전해졌다.

감우성은 양수리에서 인터뷰 장소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히노's 레시피'까지 혼자서 차를 몰고 나타났다. 20년 된 아톰 티셔츠를 입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한 사내는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이 현대적 레스토랑과 잘 어울렸다.

그는 먼저 와인을 오픈해 달라고 부탁했다. 숨죽였던 와인이 열리는 동안 우리는 간단하게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기자는 그의 미간에 잡히는 주름을 만족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굳게 닫혔던 그의 마음의 자물쇠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가 거의 10년 만에 인터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카페는 기쁨과 의혹으로 출렁거렸다. 4년 만에 한 작품씩 출연해서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올림픽 배우'이자, 은둔형 인간으로 알려진 감우성.

그는 자신의 은둔이 신비주의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라고 했다. 벌레가 풀잎 속에 숨을 죽이며 살듯, 그 자신 전원 속에 ‘숨어'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양평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현대적 레스토랑 ‘히노스 레시피'까지 혼자 차를 몰고 온 감우성. 그는 화가이며 배우이고 와인 소믈리에이자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왜 인터뷰를 꺼리지요?

“내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누구도 예측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극장엘 드나들었어요. 그때 내가 동경했던 스크린 속의 배우들에 대해서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때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더란 말이죠. 그래서였을 거예요. 작품이 끝나면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지고 싶었어요. 비밀주의나 신비주의는 아니었어요. 배우로서의 소신이었고 생존 본능이었을 거예요.”

-그런 생각에 왜 변화가 생겼습니까?

“팬들의 원성이 대단했어요(웃음). 공항이나 카페에서 잠시 얼굴을 보여도 그거 하나로 ‘월척'을 낚은 것처럼 디시 인사이드에 즐거운 소란이 일어났어요.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또한 그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 중입니다.”

-어떤 고민이지요?

“(미소 지으며)대중에게 노출이 없으면 저평가되기 쉽더군요.”

-상품성과 정체성 사이의 고민입니까?

“상품 자체는 사실 말이 없어요. 캐릭터와 연기에 하자가 없으면 신뢰가 생기는 거죠. 단지 상품이 포장지를 뚫고 나와서 자기 PR을 해야 한다는 게 어색해요. 저는 특별한 소속사도 없이 혼자 운전을 하며 다녀요. 그런데 대규모 시스템 안에서 저라는 상품이 잘 유통되지 않으면 저는 또 재고품으로 창고에서 먼지 쌓인 채 있거나 골동품으로 낡아가겠죠. 그런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견디고 자기 가치를 지키며 늙어온 배우들을 알아요.”

그는 로버트 드니로와 ‘마블' 코미디에도 출연하는 60대 배우들을 거론했다. 아무리 쇼비즈니스로 재편된 세상이지만, ‘늙은’ 배우들은 그들의 직업이 로또나 도박이 아니라 존엄과 인내의 약속이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해내지 않더냐고.

물기가 가득한 김선아와 메마른 감우성이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킨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기실 ‘사랑의 설렘'보다 ‘사과의 진정성'과 ‘아름다운 종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손정현 PD는 죽어가는 개와 살며 고독사를 걱정하는 까칠한 중년 남자 ‘손무한' 역에 감우성을 떠올린 후, 그를 수소문했다. 양평에서 텃밭을 가꾸며 자연인처럼 살아가는 그를 만나 멜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꼬드겼다.

실제로 감우성은 사랑과 고독에 눈 떠가는 반백의 남자를 연기하기 위한,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저 자신, 더 늙고 더 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진짜 더 좋은 배우, 삶에 더 적합한 배우가 되겠지요. 아직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만약 준비라면(그는 작품마다 4년의 여백을 두곤 해서 올림픽 배우라는 별명을 가졌다), 나는 작품 속에서 최적의 빈티지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을 고독하게 발효시키는 이 배우의 표현 방식에 소름이 돋았다.

‘키스 먼저 할까요'를 하면서 큰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촬영장엔 늘 팬들이 보낸 밥차와 커피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웃음).”

-육체가 녹슬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처음엔 ‘오십 먹은 역할을 나한테 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역할에 맞는 자연스럽게 바랜 외모를 만들었어요. 껍질이 얇고 마르고 주름이 있고 흰머리가 내려앉은… 사실 저는 예전부터 중년 배우들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참 좋아했어요. 나는 언제 그런 얼굴이 될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탄식했다. “세상에, 감우성이 언제 저렇게 늙어버렸담." 그는 자기만의 신념과 관객의 시차 사이에서 잠시 현기증을 느끼는 듯했다.

-연기할 때마다 많이 앓는 거로 알고 있어요.

“아프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웃음).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알포인트'를 찍을 때는 캄보디아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맸고, 드라마 ‘산'을 찍을 땐 에베레스트산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죠. 그러나 가장 힘든 건 배역에 깊이 빠졌다가 나오면 겪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입니다. 사고를 겪고 난 것처럼 후유증이 심하죠. 결국 그것도 제 욕심 때문이에요. 잘 하고 싶으니까요.”

-손무한에서 빠져나오기 힘이 드나요?

“아니요. 오해하셨군요. 저는 그와 철저히 이별을 했습니다. 그의 잔재가 저에게 남아서 힘든 게 아니라 몸이나 정신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연기한 후의 후유증을 처리하지 못했을 뿐이죠. 영화 ‘블랙스완'을 보면 나탈리 포트먼이 무대 뒤에서 극심한 환각에 빠졌던 것과 비슷해요. 저는 그 일을 아주 심하게 겪습니다. 뉴스에서 타인의 죽음을 보면 그 고통의 과정이 세포 하나하나에 다 느껴질 정도죠. 그런데 더 욕심을 내자면… (한참 뜸을 들이다가)저는 제 드라마를 본 분들도 그랬으면 한다는 거예요.”

캐릭터의 잔상이 되도록 오래 머물러 시청자의 일상에 깊은 흔적을 남기길 원한다고, 그러면 덜 외로울 것 같다고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일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그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시적인 영화죠"라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포스티노'에서 시골뜨기 집배원 역할을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는 촬영 도중 심장병 진단을 받고도 촬영을 강행하죠. 영화 속에서도 죽었고, 실제로도 촬영이 끝나고 12시간 후 사망합니다. 가끔 그 영화를 생각해요.”

그 말은 나를 몹시 당황시켰다.

-어쨌든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매일 아침 sns에 ‘굿모닝'이라는 인사를 남겨주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삶을 이어가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미소지으며) 살아있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불현듯 제가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갇혀서 고통을 즐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삶을 비관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건 어리석죠. 힘든 연애 끝에 결국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듯, 살아있다는 건 참 질기게 위대한 거죠. 이렇게 앉아서 대화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는 언젠가 꼭 한번 혼자 여행해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당신은 드라마에서 “나 죽어요.”와 “사랑해요.”를 거의 같은 톤으로 담담하게 연기했어요. 저는 그게 무척 신비했어요. 저 말을 하는 사람과 저 말을 듣는 사람의 심장에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지요. 그래서 더욱 간결하게 말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도록.”

시한부 삶을 사는 감우성 옆에서 잠을 깬 김선아가 매일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굿모닝'을 속삭이듯, ‘나의 굿모닝’에 대수롭지 않게 응답하는 ‘너의 굿모닝’이 얼마나 큰 선물인 줄 그때 알았다.

-당신은 뼛속까지 ‘츤데레'군요.

“생각해보면 내 상대에게 최소한의 충격을 주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되어서 나온 톤이 아닌가 싶어요.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를 배려하고 싶었습니다. ”

-김선아 씨 이야기인가요?

“네. 김선아 씨는 철저히 감정으로 연기하는 배우였어요. ‘로코퀸’으로 명성이 높은 배우라, 저는 그녀가 기술과 경험을 섞은 효율적인 연기를 하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100% 감정으로 연기를 하더군요. 그렇게 감정을 다 쓰고도 그녀가 인정과 사랑을 받는 배우로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은 게 놀라웠어요. 그녀는 순수예술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환경 변화에 따라 빛이 나기도 빛이 바래기도 했어요. 마치 젊은 시절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답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필사적이었다. “이 나이 먹어서 분석 당하는 건 어색해요. 내 성향이 읽혀서 다음 작품에 참고 자료로 사용되는 걸 원치 않아요. 말했듯이 나는 내 연기가 예측불허가 되길 원해요”

대중 스타로 이해받고 사랑받기보다, 그 자신 배우라는 ‘감정노동'의 등짐을 지고 4년마다 시시포스처럼 절벽을 오르려는 감우성이라는 단독자.

그의 이력을 훑어보면 감우성은 늘 대중의 고정 관념을 깨는 낯선 방식으로 세상에 나타나곤 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는 결혼제도에 반기를 든 엄정화와 만나는 냉소적인 시간강사로, ‘연애 시대'에서는 부부였다가 헤어진 아내 손예진을 친구처럼 만나는 서점직원으로.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 이준기를 사랑하는 광대로.

사랑과 결혼이라는 안전한 패러다임 바깥에서 비로소 진짜 금지된 ‘어른의 구애'를 탐사해온 감우성의 얼굴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씁쓸했지만 자기기만의 기색이 없었다.

“저는 정통 연기를 한 사람이 아니라 정확하고 안정된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늘 혼선을 겪고 있죠.”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3학년 재학 중에 MBC 공채 20기로 연기를 시작했다. 한석규가 그와 공채 동기다. 당시엔 모두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

성정은 여리지만 자기 신념이 강했던 이 사내는 학창 시절부터 방송국을 거쳐 군대를 제대하기까지 기나긴 시간을 구타와 함께 보냈다. “내 인생은 26살까지 맞는 게 일이었어요. 너무 맞아서 ‘생활의 달인'에 나가도 될 정도였어요(웃음).”

군대에서는 당시 인기 있었던 차인표, 이휘재, 구본승과 스물 몇 편의 군 영화를 찍었다. ‘노역’이라 할 만큼 고된 ‘예술 막노동'을 거쳐 제대하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강원도 화천이었어요. 부대 앞에 매점에서 소주 한 병에 삼포 만두를 안주로 먹었어요. 날씨도 좋았어요.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 행복했어요. 아무도 때릴 사람이 없었고, 이젠 버스만 타러 가면 되는구나…이제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갑자기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급커브를 도는 히스테릭한 웃음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트릭이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감우성은 언젠가부터 눈물샘이 고장 났다고 했다. 삶의 높은 긴장과 압력을 필사적으로 감내해온 한 남자가 과거의 ‘해방감'을 추억하며 웃고 있다. 아니 울고 있다. “촬영장에서도 종종 이랬어요. 메이킹 필름을 보면 웃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았어요.” 이번 드라마에선 실제로 보일 눈물의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자신, 치열하게 웃다가 얼마나 NG가 났는지 모른다고.

토씨 하나까지 이미지 전략으로 계산된 홍보 사회에서 불안하고 자기 보호적이고, 지적이고, 개인적이고, 가식이 없는 순수한 예술가를 만나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 나는 숨을 죽였다.

“4년 마다 작품을 하는 건 내 의도가 아닙니다. 배우는 막연히 작품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죠.”

-이준익 감독과 영화 ‘왕의 남자(2005년)'에서 광대 장생으로 살 때는 어땠습니까? 줄을 타는 광대의 삶에 해방감을 느꼈나요?

“저는 ‘왕의 남자’로 이미 꿈을 이뤘어요(웃음). 최고의 대본으로 좋은 감독, 좋은 동료들과 일했고 최선을 다했고(그는 1년 동안 연습해서 실제로도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놀았다), 결과도 좋았어요. ‘왕의 남자'는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 다음으로 3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어요. 대작 영화들이 천 개가 넘는 멀티플렉스 물량 공세로 기록을 낸 데 비해, ‘왕의 남자'는 전국 230개 관만으로 1,230만 관객을 동원했죠.”

-감격했겠군요.

“아니요. 저는 잘 흥분하지 않습니다(웃음). 일하는 과정에선 곧잘 흥분하지만, 결과엔 냉정하고 차분해요.”

-그럼 어디에서 위로받습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작품이 끝나고 내가 ‘떳떳하다'라는 감정이에요. 호평이든 악평이든 평가는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해요. 평가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확률도 높습니다. 제게 달린 일이 아니죠. 그건 살면서 반복될 거예요. 그러니 나 자신의 떳떳함이 중요합니다.”

-당신을 ‘멜로의 장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더군요.

“(함빡 웃으며)너무 좋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다소 헐겁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겠지만, 우리 모두 성숙하게 대처했으니까요.”

-‘연애 시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나쁜 비교 대상은 아니에요(웃음). 가끔 엉뚱한 연관성을 찾으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겐 아련한 추억일 뿐입니다. 배우 입장에선 흐뭇하지요.”

-후회될 때는 없었나요?

“없습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낡고 삭아야 한다'는 제 지론에 처음엔 제작사도 반대했지만, 한 달이 지난 후 ‘당신 말이 맞았다'라고 하더군요. 시간이 지난 후엔 다 인정받았어요. 작품의 완성도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주장했던 표현에 대한 이야기예요.”

-당신이 연기하는 걸 누가 가장 자랑스러워하지요?

“(한참 뜸을 들이다) 와이프는 말이 별로 없어요. “어땠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해요. 어느 날 드라마를 보는 제 곁에서 관심 없는 척 왔다 갔다 하더니 슬며시 앉더군요. 그러고는 조용히 울어요. 사실은 어제도 혼자 보고 울었다고… 아내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명료하게 말하진 않아요. 속이 깊은 사람이에요. 나 같은 사람 곁에서 동요하지 않고 견뎌주는 거, 그게 사랑이라고 저는 느껴요.”

감우성은 MBC 20기 공채 탤런트로 만났던 강민아 씨와 15년 연애끝에 2006년 호주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약식으로 치러진 결혼식은 감우성의 아는 선배가 주선한 호텔 내 현지 외국인이 주례를 섰고, 30분 만에 끝났다.

-양평 전원주택에서 사는 삶은 어떻습니까?

“지금 계절엔 정말 아름다워요. 미세 먼지가 없는 날엔 별들도 많고 마당엔 초록이 가득하지요. 제가 그곳에 사는 건 벌레가 살기 위해 잔디와 똑같은 색깔로 지내는 것과 같아요. 저는 아내와 함께 텃밭을 가꿔요. 꽃은 집사람이 살피고 저는 잡풀을 제거하거나 전지를 합니다. 아이는 없지만, 동물을 키우다 보니 집 안팎으로 생명감이 가득합니다.”

잘 익은 와인 같은 배우 감우성.

5월의 어느 날, ‘운 좋게도’ 나는 천연기념물에 가깝게 보존된 한 완벽주의자와 긴 시간을 보냈다. 생존을 위해 고립을 택한 남자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서 격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린 시절 드나들었던 동시 상영관과 그곳에서 보았던 ‘야한' 영화들에 대해. 텅빈 놀이터에 홀로 나가 마주하곤 했던 한겨울의 석양에 대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브레이크 댄스를 출 때 비에 젖은 강당에서 얼마나 많이 미끄러졌던 가에 대해. 아이유와 자우림의 노래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지에 대해.

당장 밝힐 순 없지만, 작품에 관해 놀랄만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할 땐 기쁨으로 동공이 활짝 열렸다. 서울에 사무실이 생기면 기타를 치고 시간을 보낼 거라고도 했다.

-좋은 배우가 되면 더 나은 인간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까?

“글쎄요. 한때 아주 이상한 대본을 받아들고 항의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PD가 그러더군요. “너는 좋은 대본 갖고만 연기해봤냐?” 그때 이후로는 앞으로 받을 좋지 않을 대본에 늘 대비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부딪힘도 있었지만, 지금은 갈등 없이 대처하는 기술을 익혔어요. 좋은 배우가 꼭 좋은 인생을 사는 건 아닙니다. 화려하고 완벽한 것과 행복이 꼭 일치하진 않더군요.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언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저 감사하게 살아갈 뿐이죠.”

밤이 깊어지자 간만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에 몇 개의 별이 보였다. 그가 시를 읊듯이 속삭였다. “언젠가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 별을 보며 울었어요. 에베레스트의 별은 공간을 채우는 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벌거벗은 우주의 속살이더라고요.”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지닌 그는 와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길 즐겼다. 지롱드강을 중심으로 자갈밭에서 자란 포도와 진흙밭에서 자란 포도는 토양과 날씨에 영향을 받지만, 최악의 작황에서도 거짓말처럼 최적의 블렌딩 와인이 만들어진다고. 그게 장인의 손맛이라고.

휘파람 불듯 마지막 테이스팅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감우성이 한 병의 좋은 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롭고 감미로우며, 드라이하지만 촉촉한, 낡아갈수록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우리 시대의 영원한 ‘츤데레'. 감우성이 앞으로 우리에게 좀더 자주 나타나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