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에서 파는 육류·해산물·채소류 등 각종 음식물과 포장용 배달 음식 등을 감싼 비닐 랩(wrap) 대부분이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가 사용 금지한 PVC(폴리염화비닐) 플라스틱 재질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냉동식품'을 제외한 모든 식품에 PVC 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난 2005년부터 규제하고 있다. 현재 가정용으로 파는 랩은 대부분 고형연료(SRF) 등으로 재활용 가능한 PE(폴리에틸렌) 재질이다. 그런데 대형 매장 등에선 가격이 싸다는 이유 등으로 여전히 PVC 랩을 쓰고 있는 것이다.

22일 본지는 모바일 앱으로 주문해 배달받은 짜장면·짬뽕에 씌운 랩에 불을 붙여봤다. 불은 금세 꺼지면서 비닐이 오그라들고, 염소 성분 특유의 톡 쏘는 냄새가 나며, 연소 후 검은 덩어리가 남는 것을 확인했다. 환경부가 'PVC 재질 간이 측정 방법'에 기술한 연소 특성 그대로였다. 같은 방식으로 실험한 대형 마트와 기업 구내식당 비닐 랩도 마찬가지였다.

환경부는 랩뿐 아니라 각종 포장재도 PVC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계란 포장이나 건전지·면도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PVC 포장재가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면서 "PVC 재질 플라스틱은 태우면 각종 유독물질이 나와 소각이나 SRF로 재활용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PVC 포장재 사용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제품의 포장 재질·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해 냉동식품을 제외한 모든 식품은 물론 약품·식용유·농약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한 각종 제품에도 PVC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대형 마트 등을 취재한 결과 시중에서는 여전히 PVC를 사용한 포장재가 쉽게 발견됐다. 배달·포장 음식은 물론 건전지·면도기 등 한 면은 종이, 다른 면은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소형 생활용품에 쓰이고 있었다.

재활용 어렵고 유해 성분 있을 수도

특히 환경부가 '사용 금지' 제품군으로 특정해서 명시한 '계란·메추리알' 포장과 '튀김·김밥·햄버거·샌드위치' 포장재도 대부분 PVC 포장재가 사용되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오래전에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정부, 지자체가 지금까지 제대로 단속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어떤 제품군에 얼마나 많이 PVC 포장재가 쓰이는지 파악 중"이라며 "관련법을 정비하는 등 개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PVC는 신용카드, 창틀, 파이프, 합성 가죽 등의 소재로 다양하게 쓰인다. 생산 업체들은 "PVC는 유연한 재질이어서 제품을 만들기 쉽고 다른 플라스틱 재질보다 가격이 싼 편"이라고 말한다. 다른 플라스틱처럼 PVC도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도구인 것이다. PVC는 과거 환경호르몬 논란도 있었다. 딱딱한 PVC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첨가되는 프탈레이트 같은 화학물질이 남성의 정자 수를 줄이거나 생식 계통 기형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환경부는 지난 1993년 재질에 따라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용기를 관리하고 있다. 크게 7종인데, '플라스틱 용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페트(PET)가 1번, 전자레인지에 사용할 수 있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이 2번이다. 한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이 중 3번에 해당하는 PVC가 재활용 작업을 방해하는 '지뢰' 같은 재질"이라며 "PVC는 재활용이 어려워 걸러내야 하지만 페트나 비닐봉지 등으로 사용되는 폴리에틸렌(PE) 등과 마찬가지로 투명하고 질감도 비슷해 사실상 선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PVC는 다른 플라스틱 재질보다 염소 함유량이 높아 재활용한다고 해도 따로 분류해 염소를 빼내는 등 정교한 재활용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내 재활용 업체 대부분은 PVC 재활용만을 위한 별도 공정을 갖추지 않고 있다. 한 재활용 전문가는 "PVC를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함께 대부분 중국에 수출했지만 최근 중국의 금수 조치로 지금부터는 국내에서 PVC를 처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PVC를 태울 때 나오는 염화수소 가스는 기계를 부식시키는 성질이 있어 소각장에서 태우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PVC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소각 대신 최대한 재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수액 세트(줄)에도 PVC 쓴다"

PVC가 수액 세트(줄)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수액 줄 사용을 금지했다. 프탈레이트 같은 성분이 수액과 함께 인체로 들어가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일반 병원에서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PVC 수액 줄을 여전히 사용 중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PVC 수액 줄은 개당 200원으로 다른 재질의 수액 줄(3000원 안팎)보다 저렴해 다른 병원에서도 종종 사용하고 있다"면서 "식약처가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지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국내 생산이든 수입품이든 PVC 수액 줄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특별취재팀〉

박은호 차장, 채성진 기자, 김정훈 기자, 김효인 기자, 이동휘 기자, 손호영 기자, 권선미 기자, 허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