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한 백인 남성이 갑자기 식당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히스패닉계 여성 고객과 스페인어로 얘기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론 슐로스버그라는 이름의 변호사로 밝혀진 이 남성은 “여기는 미국인데 왜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느냐”며 “영어로 말하라”고 난동을 부렸다. 그는 직원들이 불법 이민자 아니냐며 이민세관국(ICE)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급속히 퍼지며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미 CNN은 20일 “사실상 미국의 언어가 영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미국인 상당수가 영어만 말하지만, 사실 미국에는 공용어 자체가 없다”고 보도했다.

변호사 아론 슐로스버그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뉴욕의 한 식당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고객과 종업원에게 인종 차별적인 폭언을 했다.

CNN은 “미국에서는 영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헌법과 연방법 어디에도 없다”며 “여러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국가들이 공용어를 지정하긴 하지만, 미국은 단 한 번도 공용어를 정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미국 땅에서는 건국 전부터 영어 외에 다양한 언어가 쓰였다. 영국이 북아메리카 동부에 건설한 식민지 13개 지역에서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비롯해 수많은 원주민 언어가 쓰였다.

미국에서 강제로 영어를 쓰게 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들이 영어를 미국의 공용어로 지정하기 위한 입법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주(州) 차원에선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세츠, 애리조나주는 공교육에서 이중 언어를 폐지하고 영어로만 가르치는 지역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미국 내 영어 사용 논란은 단순히 언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웨인 라이트 퍼듀대 언어학과 교수는 “언어 사용과 관련된 인종 차별적 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영상 속 남성은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ICE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는데, 이는 스페인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불법 체류자로 간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학자 비아트리스 아리아스는 “영어가 미국인을 상징하는 조건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미국인의 정서가 인종 차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민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일삼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백인 여성이 한국인 유학생에게 “여긴 미국이니까 영어만 써라” “네가 쓰는 외국어가 역겹다” 등의 폭언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