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 해결에 정부가 올해 투입하는 예산이 처음으로 30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신생아 수(32만~33만명 추정)를 감안하면 신생아 한 명당 9200만~9500만원이 쓰이는 셈이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한 군소 후보는 "결혼하면 1억원, 애 낳으면 3000만원 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시 '황당 공약'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제 젊은 층에서는 "차라리 그렇게 하는 편이 낫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 부모들도 "수십조원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정부가 해마다 수십조원씩 예산을 쓴 지 오래됐지만 정작 정책 수요층의 체감도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생아 한 명당 예산 1억원 육박

20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저출산 대책 사업비는 중앙부처 예산 26조3189억원과 지방자치단체 예산 4조2813억원 등 총 30조6002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예산이 급증한 것은 ▲아동수당 신규 도입 ▲인플루엔자 무료 접종 대상 확대(생후 6~12개월→6~59개월)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06년 이후 중앙 부처가 쓴 돈을 모두 합치면 152조6668억원, 지자체 자체사업(2010년 이후 공식 집계)까지 합하면 174조9303억원이다.

지난해 저출산 대책 예산은 27조5728억원이었다. 통계청이 잠정 집계한 신생아 수(35만7700명)에 비추면 아이 한 명당 7708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신생아 1인당 예산은 지난 2010년 1421만4000원에서 작년 7708만3600원으로 7년 새 다섯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예산 효율성이 이보다 더 떨어질 전망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출생 신고된 신생아는 11만705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2만6181명)보다 7.2% 줄었다. 통계청이 집계한 1~2월 신생아 수 역시 5만9600명으로 전년(6만5400명)보다 8.9% 줄었다. 연말까지 이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신생아는 32만~33만명대로 예상된다. 올해 저출산 예산(30조6002억원)을 감안하면 신생아 한 명당 9200만~9500만원 쓰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이 한 명당 1억원 가까운 돈이 쓰이는 것이다.

◇"수십조 예산, 어디에 쓰나?"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세 자녀를 키운다는 엄마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수십조가 쓰였다는데 도대체 그 혜택은 어디에서 받는지 모르겠다. (아이 낳으면) 혜택이 있다는데 누리는 국민이 많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초 본지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의 조사에서 25~45세 1004명 중 절반 이상(59%)은 "저출산 대책을 모른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비율은 12%에 그쳤다.

올해 중앙정부 저출산 예산의 64%(16조8230억원)는 보육·교육 분야 예산이다. 난임 시술 등 출산 지원(9.1%)까지 합하면 대부분 예산이 이미 아이를 낳았거나 낳으려는 부부에게 돌아간 셈이다. 청년 일자리 및 주거 대책(21.6%) 등 결혼조차 버거운 층에게 혜택이 돌아간 예산은 비교적 적다. 일·가정 양립 지원 예산도 5.4%에 그쳤다.

정부는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년)에서 비혼·만혼을 저출산 문제 핵심으로 꼽으면서 정책 방향을 '기혼 가구의 보육 부담 경감'에서 '청년 일자리·주거 대책 강화'로 틀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혼 부부·보육 중심인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의 주요 대상은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청년 세대"라며 "자녀를 낳아야 혜택을 받는 현 정책의 체감도가 이들에게 높게 느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저출산 예산에 허수가 많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저출산 사업 목록을 보면, 젊은 층이 결혼하고 애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업이 여럿 있다. 예컨대 '대학의 인문역량 강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개발' 등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도움 된다며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다. 기존 부처 사업이 '저출산 예산'으로 포장만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