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북한인권시민연합 컨설턴트

평양에 살다가 온 가족이 함경북도 경성으로 추방당했다. 배급이 끊겼다. 돈 벌러 간다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친척집에 먹을 것을 얻으러 간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남겨진 열두 살 나는 꽃제비(구걸하는 아이)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기를 4년, 남한에 간 아버지와 기적처럼 연락이 닿았다. 아버지가 보낸 사람을 따라 중국을 거쳐 남한에 들어왔다.

영어는 남한에 와서 말 그대로 처음 '봤다'. 알파벳이 낙서인지 글자인지도 알지 못했다. 학교 영어시험에선 개교 이래 처음이라는 '0점'을 받았다. 말씨도 다르고 행동도 튀는데 공부까지 꼴찌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나를 지키려는 시도였다. '나의 1·2·3 영어 공부'(차이정원)는 그렇게 혼자 영어 공부를 해온 이야기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책을 외웠다. 원어민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따라 했고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다. 기초를 다지고 나서는 신문 기사와 원서를 읽었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기회가 찾아왔다. 캐나다 의회 하원에서 인턴생활을 하게 됐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올 9월부터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나는 강연에서 "Hope is never lost(희망을 잃지 맙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희망은 국제관계 전문가가 되어 남북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헤어진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가족과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버텨왔다. 영어 공부 할 때도 간절히 원하면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계속 희망을 가지고 실천해나가면 한반도의 평화도, 어머니를 만나는 날도 가까이 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