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잘못됐어요. 좋은 일은 같이 하자고 열심히 떠들고 소리쳐야 합니다. 오래도 떠들고 다녔네요."

지난 3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사무실. 윤병열(77·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미국 남가주후원회 명예회장은 한국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뛰었던 31년의 시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재미 교포인 윤 명예회장은 1987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해외 후원회인 미국 남가주후원회를 만들었다. 후원회장으로 남가주후원회를 이끌며 지난 31년간 후원자 3100여명을 모았고 총 159억여 원을 모금했다. 미국 교포 사회에서 나눔 문화를 확산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제96회 어린이날 및 제14회 어린이주간 선포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오는 12일에는 모교인 연세대에서 연세사회봉사상 개인부문 자유상도 받는다.

1941년 평양에서 태어난 윤 명예회장은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와 성북구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연세대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철학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1971년 미 유학을 떠났다. 샌디에이고 USIU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LA 카운티 정신건강국에서 임상심리학 박사로 근무하며 한인들의 정신 건강을 돌보던 그는 미주 한인 언론 기사를 읽었다. 한인 주부 두 명이 한국 고아들의 사진과 사연이 적힌 종이를 들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10달러씩 후원을 부탁하러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1986년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의 문전박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주부들의 모습에 눈물이 나면서 '나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듬해 그는 동료 10명을 모아 한국어린이재단 산하 '한국 불우아동 남가주후원회'를 세웠다. 자신도 곧바로 20명의 고아들에게 매달 20달러씩 400달러를 후원했다. 그는 "87년 9월 첫 번째 후원의 밤 행사를 했고 지역 신문에 소개되면서 후원자가 크게 늘었다"며 "초기에는 개인이나 교회 등에서 매일 20~30통씩 후원 문의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는 투명한 운영을 위해 매년 결산 보고서를 언론에 발표했고, 후원회 모임 장소도 값비싼 호텔이 아닌 소규모 식당을 고집했다. 윤 명예회장은 "직접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아이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31년간 3154명 후원자로부터 모인 돈은 159억여원. 한국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한 장학금과 의료비, 지역 공부방 지원금 등으로 쓰였다. 그에게 후원회를 이끌며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요즘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미주 한인 사회 경기가 나빠지면서 후원 문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1년에 300달러씩 내던 후원회 이사의 수는 40여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윤 명예회장은 "가슴 아플 때가 많지만 후원의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으로 해왔다"고 말했다.

윤 명예회장은 남가주후원회 설립 30주년인 지난해 10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LA에서 한식당과 카페를 운영한다. 지난 20여년간 탈북민과 조선족 동포 5000여명을 대상으로 해온 무료 식사 봉사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