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는 공동선(共同善·common good)과 공공성(公共性·publicness)을 두 축으로 형성됐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사회의 위기가 오는 두 요소의 균형과 결합을 통해 공공선(公共善)을 이루는 것이 근대국가의 목표입니다."

김경희 교수는“사회 곳곳에서 공적 부문의 약화가 나타나고 있는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의 공공성 회복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서양 정치사상을 전공한 김경희(49)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유럽에서 근대국가 이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 '근대국가 개념의 탄생'(까치)을 펴냈다. 중세의 보편 질서를 대표하는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력이 쇠퇴한 뒤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들이 대두하고 그 정점에 선 피렌체의 진로를 고민했던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국가 이념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했다.

국가를 구성하는 제도나 계층을 인체의 기관(器官)에 비유했던 중세의 유기체적 국가관을 고대 로마의 공화국 이념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와 결합시켜 국가는 최선의 상태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영국 출신의 가톨릭 성직자 '솔즈베리의 존'(1115~1180)이었다. 이어 13세기 들어 로마법을 총결산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부활하면서 고대에는 로마만 누리던 '법인체(universitas)' 지위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부여됐다. 비슷한 시기에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수용하며 국가의 목표는 구성원들의 개별 이익을 넘어서는 공동선의 추구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가를 군주나 인민과 분리된 독립적 존재로 보는 근대국가의 이념적 토대가 이렇게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국익의 극대화는 어떤 정체(政體)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아퀴나스는 법률에 제한받는 온건 군주제를 선호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는 군주국(시뇨리아)과 공화국을 각각 대표하는 밀라노와 피렌체가 격심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를 장악한 영토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는 군주정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국가는 가문과 파당의 소유로 간주됐고 후견·피후견 관계를 이용한 지배가 횡행했다. 김 교수는 "정의의 공동체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가 공공성이 무너지면서 사적 집단인 '레스 프리바타(res privata)'로 전락한 것"이라고 했다.

피렌체의 고위 공직자였던 마키아벨리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보면서 공동선과 공공성의 조화를 고민했다. 그는 대외적 위기 극복과 내부 단결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된 근대국가를 '스타토(stato)'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했다. 현실주의자였던 그는 위기 때 공공성을 내세워 질서를 만드는 방략을 '군주론'에 담았고, 평상시에 공동선을 지향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을 '로마사논고'에 적었다.

우리가 피렌체와 마키아벨리에게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은 무엇일까? 김경희 교수는 "부와 권력이 독점되고 공적 관계가 사사화(私事化)되면 공화국이 몰락한다는 엄혹한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