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관련은 가장 뒤쪽인 셋째 주제 중 마지막 4항에 단 세 문장으로 들어갔다. 청와대가 '핵심 의제'라고 했던 비핵화가 맨 뒤로 밀린 것이다. 비핵화에 대해 남북은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 방안이나 북한의 명시적 약속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공동 발표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5월 말~6월 초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을 의식해 비핵화 문제에 대한 진전된 태도 표명을 유보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비핵화 대가로 줘야 할 남북 관계 개선 조치를 미리 약속해 주고도 얻어낸 것이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은 '비핵화' 서명했지만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은 들어갔다. 이 표현을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로 가는 전 단계로 본다면 진전으로 볼 수도 있다. 김정은이 여기 서명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퍼스트레이디’의 건배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나 이행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확인했다고만 했을 뿐 북한이 핵 폐기를 하겠다는 명시적 언급도 없었다. 두루뭉술한 표현이라 해석상 논란을 낳을 소지가 크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등을 모두 포기하라는 것인데 거기엔 크게 미치지 못한다.

◇북핵 폐기 구체 내용은 없어

북핵이 고도화한 시점에 열린 회담인데도 북핵 폐기 범위, 시한(時限), 이행 조치 등이 전혀 담기지 않은 것도 판문점 선언의 한계다. 일부에선 "북한에 대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명기했던 2005년의 9·19 공동성명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천 전 수석은 "1991년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비교해도 나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초보적 핵개발을 시작하던 27년 전 만들어진 이 선언에도 '핵무기의 제조, 보유, 사용 등을 하지 않는다'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핵)사찰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번 선언에는 북한의 핵무기, 핵시설, 핵사찰 등에 대한 초보적 언급도 없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직접 비핵화 언급 문서에 서명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구체적 이행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며 "전략적 손실을 보지 않고 미·북 대화의 동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北 핵개발에 南도 책임?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최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ICBM 시험 발사 중단 선언을 한 것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다.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부분도 문제다.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지닌 곳은 북한뿐이다. 그런데 이번 선언은 한국에도 '비핵화를 위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했다. 북이 우리에게 '미국의 핵우산 및 전략무기 제공받기를 중단하고 주한 미군 기지도 사찰하라'고 주장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