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인문학 저술가

낯선 경험이다. 평생 책을 기획하고 쓰는 게 직업이어서 책을 써도 늘 계획적으로 썼다. 그런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루페)만큼은 전혀 달랐다. 상황을 따라 흘러와 보니 책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 아내의 마지막을 좀 더 붙잡으려 했던 그 순간들이 낯설었던 만큼 이 책도 낯설다.

아내의 병이 깊어지면서 부엌에 서야만 했다. 아내는 요리를 나에게 부탁했고 내가 한 음식만 겨우 받아먹었다. 피해야 할 게 많은 환자용 식사 준비는 가뜩이나 부엌일을 잘 모르는 나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부엌에 들어서면 언제나 천길 벼랑이 앞을 가로막았다.

조리를 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레시피를 다시 뒤져보기 일쑤였고, 한번 만들어 본 음식도 다시 하려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안 되겠다. 글로 써두자. 조리 과정만 그렇게 기록해 페이스북에 하나둘 올린 게 시작이었다. 아픈 사생활을 들키고 싶지 않아 정말 조리 과정만 쓴 것 같은데 예민한 독자들이 슬픔의 냄새를 맡고 댓글을 달았다. 한 유명 편집자는 대파를 쫑쫑 썰고 깨소금을 치는 이 이야기가 '가슴에 사무친다'며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그날, 그 사무친다는 말 한마디에 내 슬픔의 둑도 무너지고 말았다.

책이 나온 뒤 접하는 독자의 반응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고통의 시간에 드물게 찾아주는 지극히 짧은 기쁨을 남겨두려 썼지만 독자는 오히려 슬픔을 읽는다. 나는 얼마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는가를 말하는 데도 독자는 얼마나 사랑했는가로 읽는다.

아직 나는 이 낯선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책을 펼칠 때마다 힘겹게 한입 받아먹던 아내의 얼굴이 겹쳐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내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