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도장 찍는 장면을 보고 신기했어요. 제 손으로 한글 이름 도장을 팠으니 평생 기념품이 될 것 같아요."

25일(현지 시각) 저녁 파리 16구에 있는 주(駐)프랑스 한국문화원. 파리1대학에 다니는 줄리 앙드레(22)씨는 한글로 '줄리'라고 판 도장을 종이에 찍어보며 밝게 웃었다. 앙드레씨를 비롯해 이날 프랑스인 40여 명이 조각칼을 들고 저마다 한글 이름으로 된 도장 만드는 체험을 했다. 한국문화원이 판화가 이철수씨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판화와 원리가 비슷한 도장 파기 행사를 열자 프랑스인들이 몰려든 것이다.

25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판화가 이철수씨 작품전에 찾아와 한글 도장 만들기 행사에 참가한 프랑스인들이 조각칼로 도장을 새기고 있다.

한국문화원에 찾아온 프랑스인들은 재불(在佛) 조각가 최토지(42)씨의 지도로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새긴 도장을 음각(陰刻)으로 만들었다. 일부는 '가자' '내일' 같은 짤막한 한글 단어로 도장을 팠다. 회사원 루도빅 파네티에(60)씨는 "2년 전 한국을 여행할 때 도장이 워낙 인상적이었다"며 "글씨 모양이 예쁜 한글로 된 도장을 파보니 신기하다"고 했다. 최토지씨는 "서명을 하는 유럽에서는 도장 찍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호기심을 가진 것 같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은 한국문화원 내부에 전시된 판화 30점을 진지한 눈빛으로 감상하기도 했다. 주부 티아나 페트로빅(50)씨는 "아들이 K팝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예전에 관심 갖던 일본 문화가 상당 부분 한국에서 넘어간 것을 알게 돼 놀랐다"고 했다. 이날 판화 전시회와 도장 파기 행사를 찾은 프랑스인들은 모두 100여 명에 달했다.

전시회 한편에서는 즉석에서 판화 원본 동판에 잉크를 묻혀 한지(韓紙)에 판화를 찍어주기도 했다. 줄지어 기다리던 프랑스인들은 판화를 들어 보이며 즐거워했다. 변호사 릴리안 스타롱(59)씨는 "멀리서 보면 간결해서 인상적이었는데 가까이서 원판을 보니 세심한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박재범 한국문화원장은 "판화가 친숙하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전시만 하지 않고 도장 파기 행사를 열어 참여를 유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