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제가 좀 급해서요.”

지난 21일 오후 4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항공기에서 한 남자가 분주히 움직였다. 승객들을 비집고 공항 밖으로 나온 그는 차를 타고 서울로 내달렸다. 목적지는 잠실야구장. KIA와 두산전 5회쯤 도착한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치맥’을 즐기며 경기를 관전했다. ‘진퉁’ 한국 야구팬, 마크 리퍼트(45) 전 주한 미국 대사 이야기다.

얼핏 보면 한국 프로야구와 ‘치맥’을 좋아하는 평범한 외국인 아저씨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가 22일 KIA-두산전(잠실)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 치킨을 든 채 포즈를 취한 모습.

22일 KIA두산의 잠실 경기에 앞서 그를 만났다. 리퍼트 전 대사는 자신을 ‘KBO 중독’이라고 칭했다. “한국 재임 3년간 야구장만 40번 넘게 올 정도로 한국 야구를 사랑합니다.” 그는 10개 구단 홈 야구장(총 9개) 중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미국에 돌아가 항공기 업체인 보잉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지금도 한국을 들를 일이 있으면 무조건 한국 야구장 방문을 일정에 집어넣을 정도이다. 그는 이번에도 출장차 워싱턴 DC에서 18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곧바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미국 야구와 달리 한국 야구는 쉴 새 없이 응원전을 펼치기 때문에 신납니다. 물론 음식도 맛있고요.”

리퍼트 전 대사는 경기를 보기 전 꼭 지키는 ‘루틴’이 있다고 했다. 야구장에 도착하면 일단 지하철역 쪽으로 가서 맥주 한 캔을 산다. 500mL 한 캔을 마시면서 야구장 바깥을 한 바퀴 걷는다. 중간 중간 만나는 야구팬과 인사하고, 사인이나 사진 촬영 요청에도 흔쾌히 응한다.

이날도 그렇게 만난 사람만 30명이 넘었다. 15분여의 산책을 마치기 직전엔 늘 들르는 치킨집에서 순살 프라이드 치킨을 한두 마리쯤 산다. ‘치맥’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는 “마산 구장의 ‘매운 치킨’, 수원 구장의 ‘쫄면’도 베스트 음식”이라고 했다. 한국 야구 마니아의 ‘꿀 팁’(유용한 정보)이었다.

리퍼트 전 대사는 두산 베어스의 팬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생으로 메이저리그(MLB) 신시내티 레즈의 팬이기도 한 그는 “신시내티의 팀 컬러는 ‘허슬 플레이’인데, 두산도 마찬가지”라며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한국 야구 결과부터 찾아본다. 아무리 피곤해도 두산이 이겼다면 그날은 ‘좋은 아침(Good morning)’”이라고 했다.

두산 오재원(32)을 가장 좋아한다.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란다.
경기 시작과 함께 응원가가 울려 퍼지자 바로 한 소절 뽑았다. "오! 재원이 안타 날려버려~." 그는 대사 이임식 때 오재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물'이라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KT 유니폼을 입은 더스틴 니퍼트(37)에 대해선 "야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가 어디에 있든 응원할 것이다"고 했다.

리퍼트 전 대사는 학창 시절 직접 야구 선수로 뛰었다. 어릴 적 포수를 잠깐 봤다가 고교·대학 땐 주로 3루수로 뛰었다고 한다. “글러브 질이 익숙해서 수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보기와 다르게 파워히터는 아니어서 주로 단타를 많이 때렸어요.”

그에게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판세를 물었다. “두산은 정말 잘하고 있고, SK가 홈런 치는 건 무섭네요. 가장 충격적인 건 롯데입니다. 작년에 잘해서 올해 더 잘할 줄 알았는데 한국 야구는 중간 순위가 매일 바뀔 정도로 치열합니다. 이러니 안 좋아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