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의 완성|이갑수 소설집|문학과지성사|374쪽|1만3000원

2011년 등단한 저자가 내놓는 7년 만의 첫 소설집. 만화·SF·시사 등에서 채취한 글감을 반죽해 주제 의식을 조형해 나가는데, 그 조형미가 차분하고 단단해 요설을 스타일로 가장하는 최근 경향과 거리를 둔다. "우리는 엘로힘(Elohim·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 물음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창작론으로도 읽힌다.

주인공은 모두 헛되고 편협한 연습에 몰두한다. 포르노 배우가 되기 위해 영상 수천 편을 돌려보지만 데뷔 직전 성불구가 되는 형('아프라테르'), 인간도 읽지 않는 책을 탐독하는 인공지능 로봇('서점 로봇의 독후감'), 킬러를 꿈꾸며 인간병기가 됐으나 끝내 살상하지 않는 남자('품사의 하루')…. 그러나 그 무용(無用)의 완성은 나름의 환희를 지닌다. 표제작 '편협의 완성' 속 검도 사범은 매일 밤 옥상에서 '찌르기' 하나만 연습하지만, 덕분에 달이 1년에 한 번 깜박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웃기되 우스워 보이지 않는 수사적 재치도 갖췄다. '아프라테르'의 형은 이태원에서 흑인에게 두들겨 맞은 뒤, 손가락에 끼우는 철제 너클(knuckle)을 사온다. "그게 뭐냐" 묻는 동생에게 형은 "설득력"이라 대답한다. "형은 결국 2미터가 넘는 흑인을 설득해서 부하로 만들었다… 얼마 안 있어 형은 담임을 설득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독자를 설득해나간다. 수록작 '조선의 집시'에는 저자의 실제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 "소설을 읽고 내게 연락해왔으면 좋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처를 남긴다."이 문장은 진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