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를 안 했다면요? 서울 재래시장 어딘가에서 '치맥'을 뜯고 있지 않을까요? 대만에서도 프라이드치킨은 먹을 수 있지만, 페이스북에 넘쳐나는 한국의 치맥 사진을 보면 군침을 참을 수 없죠."

대만 지휘자 뤼샤오지아(呂紹嘉·58)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명훈 같은 음악가다. 클래식 변방에서 태어나 저명한 콩쿠르를 세 개나 석권, 아시아 출신 명장으로 유럽 무대를 누볐다. 그러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자 홀연히 귀국해 대만국가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 됐다. 고국의 음악 발전을 위해서였다.

심리학도 출신의 뤼샤오지아는“음악은 사람들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이라고 했다.

뤼가 다음 달 서울에 온다.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이는 모차르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한다. '피가로…'는 남장(男裝) 여자가 나오고, 정력 좋은 귀족 나리에 친자 확인 소동까지 벌어지는 떠들썩한 익살극. 베이스 장세종, 소프라노 손지혜, 바리톤 공병우와 서울시립교향악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그의 지휘봉 아래 뭉친다.

지난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뤼는 "잘 만들어진 오페라는 완벽한 틀을 갖추고 있다. 그 음악적 언어와 단면들을 지킬수록 짜임새 좋은 사운드를 낸다"고 했다. "내 역할은 그 틀 안에서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최고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거죠. 지휘자는 백 마디 말을 손짓 한 번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대만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남들은 취업을 고민할 때 그는 방향키를 음악으로 돌렸다. 음악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 미국 인디애나음대로 유학 가 피아노를 전공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 다시 방향을 틀어 1988년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 출전했다. 1등인 그랑프리.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뒤 안토니오 페드로티 콩쿠르, 키릴 콘드라신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꽃길'이 펼쳐졌다. 베를린 코미셰 오퍼의 수석 지휘자, 독일 하노버 오페라의 음악감독에 이어 2011년 세계 최고 악단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최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정명훈을 대신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해 성공을 거뒀다.

"클래식이 딱딱하다고요?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아 어려워 보이지만 오히려 그 엄격함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주지요. 대만이나 한국 사람이 독일 음악을 하면 고유의 성격을 집어넣을 수 있어 더 풍성해지고요." 뤼는 "전통은 재(ash)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다음 세대로 횃불을 전하는 것"이라며 "'진실한 마음가짐(Be true to yourself and to the music)'으로 묵묵히 하다 보면 명예가 주름처럼 쌓인다"고 했다.

▷'피가로의 결혼'=5월 3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