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최근 3주 사이에 미국의 인터넷·소셜미디어 기업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연이어 통과시키면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성매매 알선 게시물·광고를 게재한 인터넷 사이트, 포털, 소셜미디어에 대해 주(州) 검찰이 기소할 수 있고,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온라인 성매매 상대 전쟁법(FOSTA)'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서명 즉시 미국 전역에서 발효된다. 그동안 성매매·음란물 관련 콘텐츠 유통에 책임을 지지 않았던 구글·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업체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 인터넷 기업들의 데이터를 수사기관과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법안도 제정했다. 또 이들의 주요 매출원(源)인 광고에 대해서도 광고주의 신원과 자금 출처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이 의회에 상정돼 있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인터넷 기업 규제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보호에서 규제로. IT 기업에 책임 묻기 시작한 미국

지난달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클라우드법'(CLOUD Act)은 미국 정부가 테러·마약·살인 같은 범죄를 조사할 때 미국 기업들의 해외 데이터 센터에 저장된 정보까지 압수 수색 영장 없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범죄 수사 과정에서 애플·MS 등에 용의자 개인 정보 같은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기업들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번번이 정보 제출을 거부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사기관이 기업들의 동의 없이도 각종 데이터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의회에 상정돼 있는 '어니스트 애드법'(Honest Ad Act)은 인터넷 기업들의 사업 모델까지 흔든다. 이 법은 정치 광고에 대해 광고주와 금액, 재원(財源), 노출 범위 등을 낱낱이 공개하도록 한다. 업계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면 인터넷 업체들은 상당수 정치 광고 물량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매출의 절반에서 9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는 인터넷 기업들로서는 상당한 타격이다.

최근 미국 정부에서 인터넷 기업 규제를 강화한 배경에는 급속도로 나빠지는 여론이 있다. 애초 미국은 표현의 자유와 기업 혁신을 중요시하면서 인터넷 기업은 거의 규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가짜 뉴스 논란, 개인 정보 유출 같은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열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인터넷 기업들의 책임 경영과 투명성 확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한국에서도 규제 강화 가능성 커

한국 인터넷 업계에서도 미국 정부의 연이은 고강도 규제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인터넷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에서 규제를 강화하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네이버·카카오·유튜브·구글의 서비스가 음란물이나 가짜 뉴스의 유통 채널로 대거 활용되는 상황이다.

한국 인터넷 기업들은 자율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런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음란물·성매매 등 유해 게시물에 대해서는 모니터링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게시물 삭제, 게시자 계정 정지 같은 조치를 내린다. 가짜 뉴스 유포에 대해서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계정 삭제, 자동 글쓰기 프로그램 사용 금지 같은 대안을 마련하고 곧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율 규제만으로는 최근 글로벌 인터넷 업계에 불어닥치는 규제 바람을 잠재우긴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국회에는 네이버·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들에 대해 검색 알고리즘 공개나 댓글 폐지 등 규제 법안이 대거 상정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개인 정보 보호, 독과점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인터넷 기업들은 정부의 묵인 아래 책임 없는 성장을 누려왔지만, 앞으로는 전방위적 규제와 압박을 버텨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