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재활용 쓰레기 없이 한번 살아 보겠습니다.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 종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쓰레기 대란(大亂)’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4일 인턴 기자가 선언했다. 중국이 폐(廢)자재 수입을 금지하면서, 국내 재활용 업체들이 수거를 거부하던 무렵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거주하는 인턴 기자 2명이 패기(霸氣)있게 나섰다.

지난 4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6시간 동안 김소희 인턴기자(A기자)는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반대로 김하나 인턴기자(B기자)는 평소대로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마음껏 사용하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

그래픽=이은경

◇오전 8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침 먹기
오전 8시 두 기자는 서울 신촌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켰다. A기자는 집에서 가져온 물통에 음료수를 받았다. 햄버거 포장지(비닐), 감자튀김 봉투(폐지)는 거부했다. "여기에 담아주세요." 집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통을 내밀자 점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재활용 쓰레기 제로(0)로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보너스였다.

B기자가 받은 햄버거 세트(오른쪽)는 7개의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했다. 반면 플라스틱 용기를 가져간 A기자는 재활용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B기자는 자연스럽게 세트 메뉴를 받았다. 가로, 세로 30cm 정사각형 모양의 포장지가 햄버거를 감싸고 있었다. 감자튀김에는 그보다 약간 작은 기름종이로 포장된 상태. 재활용 쓰레기는 일회용 컵·플라스틱 뚜껑·빨대·쟁반 위 종이·햄버거 포장지·감자튀김 봉투로 6개가 배출됐다. 식사가 끝나고 입을 닦는 과정에서도 휴지를 사용하는 바람에 총 7개로 추가됐다.

◇오전 11시, 편의점에서 점심 해결
점심은 편의점에서 먹기로 했다. A기자는 고민에 빠졌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라면, 햄버거, 핫도그 같은 즉석식품은 대부분 비닐로 포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제품들은 모두 재활용품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돌아서려는 순간, 편의점 점원이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스티로폼은 수거한다"고 귀띔해줬다. 서울 서대문구청 청소행정과에 문의했다. "음식 등 오염물질이 묻지 않은 스티로폼은 수거가 가능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A기자는 컵라면을 사 들고 1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뛰어가, 포장지를 뜯어 내용물을 냄비에 담았다. 컵라면 용기에 국물이 묻어서는 재활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컵라면 한 그릇 먹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B기자는 거침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구매한 뒤 즉석에서 물을 받아먹었다. 5분이 안 걸렸다. B기자는 국물이 묻은 컵라면 용기, 라면스프 비닐, 일회용 젓가락을 챙겼다. 아침부터 현재까지 누적 재활용 쓰레기는 9개.

◇오후 1시.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기
점심 식사 후 카페에서 입가심하기로 했다. 두 기자는 커피를 1잔씩 주문했다. A기자는 챙겨간 물통을 이용해 커피를 받았다.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 이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을 쓰지 않을 경우 300원이 할인됐다. 하루 종일 '애물단지' 같았던 물통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A기자는 물통, B기자는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받았다.

B기자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고 홀더(폐지)로 감쌌다. 재활용 쓰레기가 4개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오후 3시, 인터넷 서점 쇼핑하기
책을 한 권 읽기로 했다. 온라인 주문 전에 '포장'은 어떻게 되는지 상담센터에 물었다. "책은 포장돼 오나요?"(A기자) "네? 비닐 팩이요..."(상담원)
상담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포장을 원치 않으시면 비닐 팩 대신 종이박스로 바꿔드릴 수 있지만...책만 배송하는 것은 어려워요"라고 말했다.결국 인터넷 서점을 포기하고 서점으로 향했다. 멀리 서점까지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환경을 지켰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B기자는 온라인 주문으로 비닐 팩에 포장된 책을 배달 받았다. 반면 A기자는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했다.

반대로 B기자는 같은 웹사이트에서 책을 주문했다. 도착한 책은 비닐 포장으로 둘둘 말려 있었다. 겉은 포장지로 싸인 상태였다. 지금까지 사용한 재활용 쓰레기는 총 15개로 늘었다.

◇오후 5시. 대형마트에서 장보기
재활용 쓰레기와의 전쟁으로 다시 배가 고파왔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신촌의 한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 삼겹살 1인분과 김치, 상추, 된장찌개 재료를 구매했다. 마트 판매대에 가보니 고기가 스티로폼·비닐랩 등으로 포장돼 있었다. 정육코너에서 플라스틱 통을 꺼내 “고기를 썰어서 여기에 담아주세요”라고 했다.

마트 직원에게 부탁해 준비한 통에 직접 고기를 받는 A기자.

다음은 김치. 김치도 대부분 비닐에 포장돼 있었다. 반찬 코너에서 다시 플라스틱 통을 열어젖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트에 왔지만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B기자는 일사천리였다. 비닐로 포장된 고기를 부위 별로 골랐고, 넣고 끓이기만 하면 3분 만에 완성되는 된장찌개를 샀다. 장보기에는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트에서 재활용 쓰레기 발생량이 폭증했다. 더 이상 숫자 세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였다.

◇오후 11시. 집에서 야식 먹기
심야가 가까워지는 시간, 출출해진 두 사람은 야식을 시켰다. A기자는 고민에 빠졌다. 재활용 쓰레기 없이 야식을 어떻게 시킬까? 먼저 족발을 시키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고기, 반찬, 국물 등 총 5개의 스티로폼 용기에 음식이 담겨서 배달된다는 답을 들었다. 재활용품을 쓰지 않는 업체를 찾기 위해 10여 곳에 전화했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A기자는 야식 주문은 포기했다.

대신 플라스틱 통을 챙겨 치킨집을 찾았다. 이 치킨집은 포장 손님에게 1000원을 할인해주고 있었다. 흐뭇했다.

A기자는 치킨집에 직접 들러 준비한 통에 치킨을 받았다. B기자는 보쌈집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같은 시각 B기자는 전화 주문으로 보쌈을 배달 받았다. 쟁반·국그릇·반찬통으로 총 5개의 스티로폼 용기가 쓰였다. 음식을 담은 비닐봉지와 랩비닐도 8개에 달했다. 탄산음료 페트병을 따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의식주(衣食住)’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재활용 쓰레기 클린족’으로서의 삶은 몹시 불편했다. 거기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두 기자가 수집한 쓰레기를 20리터(L) 종량제 봉투에 넣어봤다. A기자의 경우 봉투의 절반을 채우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B기자의 경우 봉투 2개를 꽉 채웠다.

’재활용 쓰레기 클린족’ A기자가 남긴 하루 치 쓰레기는 20L 종량제 봉투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내키는 대로 쓴 ‘재활용 쓰레기 프리족’ B기자는 하루 만에 종량제 봉투 2장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