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2022학년도 대학 입시 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교육부가 현재 중학교 3학년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학 입시 제도 개편안을 11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확대하는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1년 유예하면서 올 8월까지 새 개편안을 내놓기로 했는데, 그 전에 교육부 시안(試案)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통상 2개 정도 시안을 내놓고 의견 수렴을 거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수능 평가 방법이나 수능·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율, 수시·정시 통합 여부 등 대입과 관련된 모든 쟁점들을 나열하며 쟁점별 구체적 개편 방안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예를 들어, 이날 교육부는 '수능 평가 방법'으로 ①전 과목 절대평가 ②현행 상대평가 유지 ③수능 원점수 제도 등 3가지 안을 제시했지만, 국가교육회의에서 3개 중 하나를 택하든 아예 다른 안을 제시하든, 정해주면 따르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 '수능 평가 방법'과 함께 '수능·학종 전형의 적정 비율' '수시·정시 통합 여부' 등 3개 사항은 핵심적으로 반드시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학종 공정성 제고 방안' '수능 과목 구조' '수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여부' 등 6개 추가 사항은 필요하면 결정하거나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오늘 제시한 '열린 안'은 정부가 구체적 시안을 제시하고 찬성·반대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국민이 참여해 숙의·공론화할 수 있게 하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 결정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교육회의는 앞으로 4개월간 교육부가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항목을 정하기 위해선 적게는 100여 개에서 많게는 1000여 개의 '정책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수능 평가 방법(3개), 수시·정시 통합 여부(2개), 정시·수시 비율(3개), 수능 과목(3개), 수시 최저 기준 폐지 여부(2개) 등 5개 중요 항목만 고려해도 108개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 외에 교육부가 망라한 다른 쟁점들까지 모두 고려하면 1000개 이상 정책 조합도 나온다.

안선회 중부대 교수는 "교육부는 지난 8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을 해놓고, 국가교육회의에는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십·수백 개의 복잡한 시나리오를 모두 검토해 새 대입 개편안을 만들고 공론화까지 하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하고 있다"면서 "김상곤 장관은 역대 가장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육부 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대전 둔원고에서 3학년 학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고 있다. 이날 교육부는 현 중학교 3학년생들에게 적용될 ‘2022학년도 대학 입시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학년도 대입 개편 쟁점 가운데 핵심은 '수능 평가 방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선거 공약으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내세웠고, 작년 8월에는 절대평가 과목을 현재 2개에서 4개 또는 전 과목(7개)으로 확대하는 시안을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이번에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제시한 3가지 안 중 ①안은 김 장관이 추진해온 '전 과목 절대평가'안이다. 예외적으로 수능 점수로만 선발하는 전형은 동점자가 있을 때 수능 원점수로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②안은 지금처럼 국어·수학·탐구 영역은 상대평가를 유지하고, 절대평가 과목은 현행 영어·한국사에 제2외국어·한문을 추가하는 안이다. 이 두 가지 안은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했다 철회한 두 안과 비슷하다. 새로운 ③안은 '수능 원점수제'다. 과목별로 25개 문항을 출제하고, 문항당 4점을 매겨 100점 만점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과거 학력고사와 비슷한 방식이다.

김 장관은 이날 발표에서 "3개 안 가운데 비중을 두는 안이 없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수시·정시 통합되나

교육부는 현재 수시와 정시로 분리된 선발 시기를 통합할지 여부도 국가교육회의 논의 사항으로 꼽았다. 지금은 11월 수능 시험 전(수시)과 후(정시)에 원서 접수를 두 차례 하는데, 수시·정시가 통합되면 수능 시험을 치른 뒤 일괄적으로 원서 접수를 하게 된다. 또 수시·정시 통합 시 고3들의 2학기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기존에 9회(수시 6회, 정시 3회)인 대학 응시 기회가 6번 내외로 줄어들 전망이다.

학종 전형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 사항이다. 예를 들어, 학종 전형 제출 서류에서 대필 우려가 있는 자기소개서나 교사 추천서를 폐지할지, 학종 합격생들의 고교 유형·지역별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 등도 국가교육회의가 논의하게 된다.

국가교육회의 대입특위는 구성도 안 돼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 제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안 결정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겨 국가교육회의 역할이 커졌다. 국가교육회의는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복합적 교육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현 정부가 만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의장인 신인령 이화여대 전 총장 등 민간 위원이 12명, 김상곤 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정부·교육단체 기관장 9명 등 21명으로 구성됐다.

교육부가 넘긴 대입 개편안은 국가교육회의 산하에 별도로 설치할 '대입개편특위'에서 논의해 전체 회의에서 최종안이 결정된다. 하지만 아직 대입특위는 구성도 안 됐고, 국가교육회의가 어떤 방식으로 대입 개편안을 만들고 공론화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교육부 최성유 국가교육기획단 과장은 "내주 중 15명 내외의 특위 위원 인선을 마무리하고 개편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상곤 장관은 이날 발표 자리에서 "(당연직 위원이지만) 국가교육회의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서울 지역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할 일이 교육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인데, 자문기구에 불과한 국가교육회의에 '찬반'을 묻는 것도 아니고 아예 모든 정책을 다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은 역대 그 어느 정부에서도 본 적이 없다"면서 "이번 교육부의 행태는 결정 장애를 넘어서 '이러려면 대체 왜 교육부가 필요한지' 되묻게 한다"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8월 입시안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는 중3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