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산하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과 관련해, 국회는 작년 예산 심사에서 올해까지 USKI에 20억원 예산을 지원하기로 의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국회 의결 사항을 무시한 채 오는 6월부터 예산 20억원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청와대는 "USKI 운영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주체는 국회"라며 청와대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야당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국회 의결 전에 USKI 지원 문제를 보고받고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국회로 책임을 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의 지원 결정, 정부가 일방 중단

청와대 관계자는 7일 "국회는 지난해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 합의로 '2018년 3월까지 불투명한 운영 상황을 개선하고 이를 보고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아 20억원 예산 지원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국회가 USKI 운영의 문제를 지적했고, 정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에 따랐다는 취지다. 하지만 야당의 얘기는 다르다. 이 부대의견이 붙은 것은 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이학영 의원이 거듭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년 11월 10일 정무위 예산소위에서 국회 전문위원이 "이 의원 지적에 따라 부대의견에 넣겠다"고 하자, 당시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은 "여기서 토론할 문제가 아니다"며 반대했다. 박 의원은 '여기(USKI 예산)는 따로 감액 의견도 없다"고 했다. 청와대가 USKI 문제를 보고받고 논의한 이후다.

그보다 앞서 8월 11일 정무위 결산소위 때는 이 의원이 "USKI 사업 전면 재검토 요구가 있다"고 하자, 박선숙 의원이 "USKI는 미국 내 위안부 문제 대응에도 관련 있다. 성과 점검이 먼저"라고 제동을 걸었다.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의 요구로 예산 중단 조치까지 갔다는 청와대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

더구나 부대의견 어디에도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예산 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2018년 정기국회에서 USKI의 운영 성과를 평가하여 USKI에 대한 출연금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고 돼 있다. 김용태 국회 정무위원장은 "국회가 결정하기 전에는 계속 지원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을 중단해도 되느냐"고 했다.

◇"연구보고서 허접스럽다"에 "모독하나"

청와대 관계자는 "USKI는 실적과 재정이 불투명하다는 게 국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인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받아낸 사업 내용 보고서도 매우 불성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안다"면서 "(USKI 보고서도) 허접스러운 내용이었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에 대해 '허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갈루치 USKI 이사장은 "USKI는 불필요할 정도로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작년 취임 이후 수준 높은 연구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USKI 측은 "작년 연말엔 아예 회계 관련 기초자료까지 보냈다"고 했다. USKI 관계자는 "청와대가 '허접'이라고 한 것은 존스홉킨스대와 '38노스' 등 연구소 활동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구재회 장기 집권?

청와대는 "구 소장이 12년째 장기 집권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USKI 관계자는 "청와대가 '장기 집권'이란 표현을 쓴 건 대학 연구소를 권력 차원에서 보는 발상"이라고 했다. 실제 미 싱크탱크에서 장기 재직한 소장은 많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2000년부터 18년간 소장을 맡고 있다.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전 회장은 36년간 재단을 이끌었다.

◇보고받고도 관여 안 했다는 청와대

청와대는 USKI 문제에 대한 개입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김준동 KIEP 부위원장은 문제의 국회 '부대의견' 논의가 있기 전인 지난해 11월 초 청와대 이태호 통상비서관과 홍일표 정책실장실 선임행정관을 찾아 USKI 문제를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행정관은 자기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김 부위원장이 먼저 만나자고 해서 이 비서관과 홍 행정관이 만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부위원장이 USKI 관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홍 행정관 측에서 냉정한 평가와 과감한 대안(개선 계획)을 제시해 달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핑계를 대지만 현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