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공무원인 '대통령'의 직무에 대한 대가
삼성 승마지원 기준, 공범 최순실과 같은 벌금
추징금은 최순실만… 법원 "직접 취한 것 없어"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1심에서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3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긴 돈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거액의 벌금을 함께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뇌물죄 공범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지난해 5월 23일 열린 국정농단 재판 첫 공판에 출석해 나란히 법정에 앉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뇌물수수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1심 선고형량을 정했다. 전체 18개 범죄혐의 중 유죄로 인정된 것이 16개, 그 중 뇌물죄가 인정된 범죄사실은 3가지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그룹의 승마지원 명목 72억9427만원, 면세점 사업권 청탁에 대한 대가로 롯데그룹이 지원했다가 돌려받은 70억원, 그리고 SK그룹에 K스포츠재단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한 89억원이다.

법원은 이들 범행이 ‘대통령’직 없이는 불가능하다 보고 무거운 형량을 택했다. 뇌물죄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대가’를 처벌하는 죄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혐의 등 다른 혐의가 더해지면서 징역형 형량은 최씨가 1심에서 받은 20년보다 높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에 최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면세점 특허 취득 관련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최씨가 관여한 K스포츠재단에 금전적 지원을 요구하도록 해 총 140억원이 넘는 거액의 뇌물 수수를 했다”고 했다. 또 “SK그룹에 대해서는 89억원의 뇌물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기업들의 지원행위에 대해 “대통령 직무 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요구했다’는 기업 관계자들의 진술, 총수들과 박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을 앞두고 개별 기업 및 청와대 참모들이 작성한 문건, 자금 지원 시기 등을 꼽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추징금을 선고하지 않았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실제 자금을 받은 최씨에게 72억여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과는 다르다.

벌금 180억원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형사소송법은 받은 뇌물액의 2~5배 사이로 벌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앞서 최씨 1심에서 삼성 관련 뇌물액수를 기준에 두고 형량을 정했다. 재판부는 “롯데 관련 뇌물은 직권남용·강요의 성격도 갖고 있고, SK에 대한 뇌물 요구는 양형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이날 선고에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72억원 중 피고인이 직접적으로 취득한 이익은 확인되지 않았고, 롯데그룹으로부터 받은 70억원은 반환된 점,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했다.

법원 관계자는 “추징금은 실제 수수자가 누린 이익만큼 선고해야 하지만, 벌금의 경우 법으로 정한 범위 내에서 재판부가 재량으로 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