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각) 한·미 양국이 원칙적으로 합의한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대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서명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한·미 간에 위대한 협상이 이뤄졌다. 이제 안보에 집중하자"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서 사회 기반 시설을 주제로 노동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왜 이러는지 아느냐. 이것이 매우 강력한 (협상) 카드이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에 대해 "우리는 한국과 훌륭한 합의를 얻어냈다. 한국은 훌륭하게 해왔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아마도 잠시 그 합의를 연기할 것 같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 했다.

한국과 합의에 만족을 표시하면서도 대북 핵 협상과 한·미 FTA를 연계시키겠다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할 말이 더 남아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내달 27일로 결정된 상황에서 청와대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언급한 '단계적 비핵화'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 행정부가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 미국의 대북(對北) 강경파들은 비핵화를 단계별로 나눠 매 단계 보상하는 구(舊) 방식이 아니라 '선(先) 폐기, 후(後) 보상'을 핵심으로 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리비아식 해법은 북한에 적용하기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검증과 핵 폐기는 순차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칼에 해결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든, 일괄타결이든, 리비아식 해법이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의 핵 문제가 25년째인데 TV 코드를 뽑으면 TV가 꺼지듯이 일괄타결 선언을 하면 비핵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우리는 북한과 잘해나가고 있는데, 어떤 일이 이뤄질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북 회담이) 좋지 않으면 걸어나올 것이고, 좋으면 북한을 포용할 것이다. 흥미진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미·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시간 끌기로 판단될 경우 협상 결렬을 선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