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 칼럼니스트

옛 티베트 속담 중에 '사람을 원숭이라고 부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신(神)들이 그 말을 듣고 다음 생애에 당신을 원숭이로 환생시킬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 사회는 대부분 자신들이 동물들보다 우월(優越)하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타인을 모욕할 때면, 동물 이름으로 낮춰 부르곤 한다.

돼지의 경우, 영어권이든 한국이든 일반적으로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두 문화권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영어권 사람들은 돼지를 무례하고 검은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로 여긴다. 만약 '돼지'라고 불리는 윗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근무시간을 결재판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여직원들의 가슴을 훔쳐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에서 12년을 살았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영국식 영어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돼지가 탐욕스러움의 상징이라는 선입견을 버릴 수 없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돼지가 비만의 척도(尺度)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돼지는 살찐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어색하다.

'개' 역시 혼동스럽다. 한국에서 개는 비천한 사람을 지칭한다. 한국에서 '개'로 시작되는 말 중 들어서 좋을 게 없다. 한국에서 타인을 지칭하는 가장 모욕적인 언사(言辭)에는 '개'가 빠지지 않는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개'는 저급함이 아니라 고된 노동의 상징이다.

실제로 'dog-tired'라는 단어는, 온종일 최선을 다해서 기진맥진해진 상태를 말한다. 영국에서 '개처럼 일한다'고 하는 것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가벼운 칭찬이다.

사실, 이러한 관용어구는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게 바뀐다. 과거 영어에서 '여우(fox)'는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을 뜻했다. 하지만 1980~90년대 남자들은 이 단어를 매력적인 여자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당시 호르몬으로 가득한 십 대 소년이라면 여성 스타에 대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She's such a fox!(그녀는 정말 예쁘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렸을 때는 누군가를 '짐승(beast)'이라고 지칭하면 큰 모욕이었다. 'beast'는 상대방에 대한 매너나 연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자비심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이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의미가 180도 바뀌었다. '노련한' 또는 '인상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큰 칭찬이 됐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 "Did you see Yun Sung-Bin win the skeleton in Pyeongchang? What a beast!(윤성빈이 평창에서 스켈레톤 우승하는 것을 봤어? 정말 인상적인 선수였어!)"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행동 중 특정한 유형은 우리의 동물 조상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동물들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동물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반면 프로이트는 우리가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기억과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동물에 비유한다고 말했다. 정신병 환자에게 보여지는 죽음에 관련된 동물 상징에 관한 그의 연구는 우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신화(神話)에 등장하는 동물에 관한 단어들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괴물이나 악마는 일반적으로 나쁜 존재다. 하지만 영어나 한국어에서 모두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영어권 언론에서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지칭할 때 보통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monst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Son Heung-Min's goal against West Ham was a monster(손흥민이 웨스트햄을 상대로 득점한 골은 엄청났다!)'처럼 '엄청난'이나 '뛰어난'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인간은 오래전에는 동물에게 쫓겨 다녔던 신세였다. 하지만 생태계에서 인간이 강자(强者)로 변모하면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사육하고 애완동물로 키우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과 동물이 맺어왔던 다양한 관계가 언어 표현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을 것이다.

과거엔 무서운 적(敵)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돌봐야 하는 애완동물들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다양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표현들도 실은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