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으로 코와 입을 막고 신속하게 밖으로 이동하세요." 21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마포고등학교. 화재 대피훈련을 알리는 경보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학교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민방위 화재훈련 진행요원과 교사들은 침착하게 학생들을 안내 학교 밖에으로 유도했다. 학생들은 안내에 따라 재킷을 당겨 코를 막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재킷을 입지 않은 학생들은 팔등으로 입을 가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대피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학교 강당에 모여 인공호흡 등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받고 교육용 인형에 체험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21일 오후 2시쯤 서울 강서구 마포고 학생들이 민방위 훈련 유도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대피하고 있다.

이날 민방위 훈련은 최근 잇따르는 대형 화재와 관련, 기존의 공습상황을 가정한 ‘민방공 대피훈련’을 대신해 ‘화재대피 훈련’으로 진행됐다. 화재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행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천 복합건물 화재와 밀양 병원 화재에서는 초동 대응 부실 등으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러나 지난 2월 세브란스 화재 때에는 앞서 훈련한 화재대응 매뉴얼에 따라 직원과 환자가 대피해 큰 인명피해가 없었다.

훈련에선 많은 시민이 질서 있게 동참했다. 오후 2시 훈련 상황이 전파되자 정부 주요기관과 학교, 백화점, 대형마트, 영화관 등 각지의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시민들이 비상구 등을 통해 야외로 대피했다.

이날 행정안전부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과 20여명으로 구성된 중앙합동점검단을 꾸려 서울과 6개 광역시, 12개 다중이용시설과 재활원 등을 동시 점검했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도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주민과 함께 직접 대피하는 훈련에 참가했다.

홈플러스 목동점 직원들이 소화기 작동법 교육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이번 훈련에 이례적으로 기업들의 참여가 많았다며 전국적으로 대형마트(749곳)·영화관(258곳)·백화점(144곳) 총 1151곳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보여주기식’ 시범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상암CGV에서는 영화관 전체가 아닌 매표소가 있는 1층에서만 대피 훈련을 진행했다. 또 총 상영관수가 7관이 넘는 곳들 중 일부만이 훈련을 진행했다. 고객이 몰리는 강남 지역은 상영관수가 한개 모자라다는 이유에서 제외됐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상영 중이던 영화를 끄고 대피 방송을 내보낸 지점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람객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교육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무적으로 훈련을 받아야하는 공공기관들 중 일부는 밖으로 대피를 하지 않고 로비에 모여 잡담을 나누는 ‘느긋한’ 훈련 태도 때문에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사기업에는 훈련을 강제할 수 없어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을 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훈련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훈련이 진행되던 시각 서울 강남역의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렸고,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화재 대응 훈련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전 민방위 훈련들과 달리 공습경보를 울리지 않아 훈련 중인지도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유민(25·여)씨는 “민방위 훈련 때마다 나오던 사이렌 소리도 없고 별다른 홍보물도 보지 못해 훈련날인지 몰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