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혹은, "그렇게 할게요".

올해 초 출간돼 14만 부가 팔린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상처 주는 직장 상사와의 대화를 이 두 문장 중 하나로 마무리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들었지만 논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때 경청 자체에만 포인트를 두며 효과적으로 대화를 끝낼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할게요'는 대답하고 싶지 않고, 할 필요도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더 대꾸하지 않기 위해 던지는 말이다. 32세 직장 여성 정문정씨가 쓴 이 책은 동년배 여성을 위한 사회생활 처세서다. 책을 낸 가나출판사 서선행 차장은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는 키워드가 30대 여성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30대 여성들이 '거리 두기' 처세서에 몰두하고 있다. 선배 세대 여성들이 상사와의 거리를 좁혀 눈에 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주로 찾은 것과 대조된다. 과거에는 2000년 출간돼 10만 부가 팔린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처럼 여성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요즘 30대 여성들은 다르다. '82년생 김지영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무조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기보다는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최근 '미투(Me Too)' 열풍도 책 판매에 영향을 줬다. 회사원 정수민(38)씨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후 '무례한 사람에게…'를 사서 읽었다. 사회생활 하며 겪은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 확실히 거절의 메시지를 주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라고 했다. 정씨는 "안 전 지사의 비서 김지은씨가 '수행비서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라고 하는 사람이라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분은 부장님이시니까' 부당한 지시에도 '아니다'라고 할 수 없었던 내 회사생활이 떠올라 울컥했다"고 말했다.

출판계는 책 시장의 '큰손'인 30대 여성의 '거리 두기' 취향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지난 1월 출간돼 3만 부 팔린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당신과 나 사이'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미친 짓이다. 더 이상 애쓰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달엔 미국 비즈니스 에티켓 강사 바버라 패치터의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하는 기술'도 나왔다. 이 책은 "여성은 분쟁을 피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서는 행동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당한 일에 뒤에서 불평하기보다는 공손하고도 강력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즘 30대 여성들은 과거처럼 남성의 문법에 무조건 맞추려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가정에서 아들과 동등하게 부모의 전폭적 지원 아래 자랐고 학교에서도 인정받아온 '알파걸 세대'다. 상사의 부적절한 대우를 감내하며 조직에서 성공하기를 꿈꾸기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택하는 게 낫다는 정서가 강하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386 여성들만 해도 엄격한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조직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했지만, 요즘 30대 여성은 조직에서의 성공보다 '거리 두기'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