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자국 내 유일한 민간항공사인 고려항공을 통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피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AP통신은 14일(현지 시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고려항공을 통해 현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 여객기 자료사진.

AP에 따르면 북한 경제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계는 모호하다. 북한 군대가 식당부터 농장, 항공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는 작은 구멍가게의 수입도 모조리 군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북한에서 이름이 있는 소비자 브랜드일 경우 더욱 그렇다. 고려항공이 그 중 하나다. 중국과 동러시아 노선 일부만 운영하는 고려항공은 항공사업 하나만 놓고만 보면 그다지 매력적인 돈벌이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위상을 높이고 북한을 국제사회와 연결하는 상징으로서 고려항공이 북한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북한 군대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했다. 고려항공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이용해 공항 내 부티크숍을 비롯한 주유소·세차장·택시 등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평양에서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통강 백화점에는 주류·탄산음료·통조림 등 고려항공 브랜드 상품만 따로 판매하는 구역도 마련했다.

고려항공의 신규사업 진출에는 최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변하는 북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리의 상점부터 국영 기업까지 다양한 사업장들이 저마다의 이윤창출 방식으로 살 길을 찾아 나섰다는 것은 북한 정부가 이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소 느슨히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북 경제 제재의 여파일 가능성이 크다.

고려항공은 특히 2015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새 터미널을 열기로 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고려항공은 이 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이듬해 택시 사업과 자체 음료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었고, 2017년에는 주유소와 세차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항간에는 고려항공이 자회사를 통한 수출 사업에 눈독 들이고 있다는 얘기도 돈다.

고려항공이 이들 사업을 통해 얼만큼 수익을 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려항공이 판매하는 상품·서비스가 다양해지고 고려항공의 상품을 수도인 평양 외 다른 지역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의 생활경제를 연구하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산하 한미연구소의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고려항공이 북한 공군의 “완전한 자회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고려항공이 벌어들인 돈이 북한 공군 소유 활주로와 이착륙장 정비에 쓰이기 때문이다. 고려항공이 판매하는 제품 또한 북한의 군수공장에서 생산된다.

멜빈 연구원은 “고려항공은 북한 공군의 보조 수입원”이라며 “북한 정부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국영기업들을 수익 창출이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어 이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수 있게끔 하는데 수년째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순안국제공항 부근에 지어진 고려항공의 새 본부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고려항공과 북한군의 관계는 간과되기 쉽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한눈에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국제연합(UN)이 발표한 수출 보고서를 보면 북한 내 모든 공항과 이착륙장은 북한 공군의 통제 아래 있다. 고려공항에 근무하는 직원들 역시 북한 공군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내선 여객기의 경우 북한 공군 소속 기술병들이 관리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AP는 “이런 정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고려항공 역시 대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는 2016년 12월 대량살상무기나 노동력 해외 송출, 현금 운반·금수물자 등을 운송해왔다는 이유로 고려항공 소속 비행기 16대를 제재 대상에 추가한 바 있다.

고려항공은 아직 UN 제재 명단에는 오르지 않았다. 다만 화물 검색이 의무화됐으며, 항공유 공급을 제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