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헌 자문안을 비공개로 보고했다. 청와대는 "오는 21일까지 개헌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회와 무관하게 대통령 독자 개헌안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우리 역사에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는 것은 독재 정부 시절 외에는 없었다. 1980년이 마지막이었으니 38년 만이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국회 3분의 2 동의를 거쳐야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지금 모든 야당이 대통령 독자 개헌안에 부정적이다. 문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개헌이 무산될 것으로 보고 그 책임을 국회와 야당에 지우려는 목적이 아닌가. 그렇게 6월 지방선거에 이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리할 까닭이 없다.

정해구 자문위원장이 이날 일부 밝힌 개헌안 내용을 보더라도 개헌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힘든 내용이 한 둘이 아니다. 헌법 전문(前文)을 바꾸면 한 구절 한 구절이 논란이 될 것이다. 수도(首都)를 법률로 정하게 한 것, 토지 공개념 확대, 공무원 노동3권 허용, 영장제 개편, 국회의원 선거제도, 대통령 결선 투표제, 예산 시스템, 국민의 사법 참여 등 모두가 논란을 일으켜 개헌논의 자체를 산으로 보내버릴 것이다. 개헌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이번 개헌 논의는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게 국민적 공감대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 개헌안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었을 뿐 정작 중요한 권력 분산은 사라져버렸다.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하고, 대통령 특별사면권 일부 제한 등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런 정도로 고쳐질 제왕적 대통령제였다면 수 십 년간 불행이 반복되지도 않았다.

개헌 논의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자유한국당 책임이 가장 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을 향해 "1년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했다. 실제가 그렇다. 한국당이 소리(小利)를 버리고 약속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에 적극 나섰다면 대통령이 개헌에 개입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고 국회서 부결되면 개헌 동력은 살아나기 어렵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보복의 악순환은 한국의 불치병으로 남을 수 있다. 현재 모든 야당이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안에 대한 합의라도 빨리 이루고 (투표) 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 것이 절충점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대통령 권력 분산과 지방자치 확대 외엔 개헌 논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독자 개헌안 제출을 접고, 여야가 지방선거 전까지 기본적인 개헌 합의안을 국민 앞에 내놓으면 우리도 협치를 제도화하는 개헌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