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사회부 차장

과거 검찰엔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공무원이 일하다 사소한 잘못을 해도 사리사욕 위해 돈 먹지 않았으면 형사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직무유기로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이유다. 그 원칙이 깨진 게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검찰은 그 두 가지 혐의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구속했다.

외환위기 심각성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리한 법 적용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검찰은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새 정권의 기류와 여론에 올라탔다. 결과는 1·2·3심 모두 무죄. 사실상 정책 판단의 잘못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검찰로선 무참한 실패였다.

그랬던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과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를 거치면서 직권남용·직무유기죄를 다시 꺼내들었다. 꺼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기(武器)'로 활용했다. 전직 대통령부터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일반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이 혐의를 적용했다. 족히 수십 명은 될 것이다. 오죽했으면 검사들이 "직권남용 전성시대" "직권남용의 남용"이란 말까지 할까.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적정한가, 형평에 맞는가에 있다. 둘 다 아니었다고 본다. 검찰은 올 2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업무를 방해한 혐의(직권남용)로 해양수산부 전직 장관과 차관을 구속했다. 해수부에 전담팀을 꾸려 특조위 예산·조직 축소 방안을 만들고, 법적 논란이 있었던 특조위 활동 종료 시점을 몇 달 앞당긴 혐의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잘못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구속까지 해야 할 범죄인가. 검찰이 밝혀냈다는 그들의 '방해'가 없었다면 특조위 조사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원인은 검찰 조사, 국회 국정조사 등을 거치면서 드러날 만큼 다 드러나 있었다. 특조위 조사가 몇 달 더 늘어났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1년 넘게 이어진 특조위 조사에서 사실상 새로 드러난 것은 세월호에 실린 철근 일부가 제주해군기지로 운반될 예정이었다는 것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세월호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끝났다"고 했다. 그런 대통령 눈치 보느라 검찰이 과잉 처벌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형평의 문제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한 혐의 중에는 문화 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적용에 미온적이었던 문체부 공무원을 사직하게 했다는 것도 있다. 대통령 통치 행위로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 직권남용이란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그랬다면 현 정권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 정권 들어 임기가 남은 공기업 사장들이 대거 사퇴했다. 외압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직권남용이 될 수 있지만 검찰은 모른 체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말 제주 해군기지 방해 시위로 발생한 국민 세금 손해 34억원을 물어내라며 불법 시위꾼을 상대로 낸 소송을 철회했다. 전(前) 정권이 불법 시위에 책임을 묻겠다며 낸 소송이었는데 없던 일로 해버렸다. 국가 재정에 명확한 손해를 끼친 것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직무유기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 공세 성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검찰 잣대대로라면 그 혐의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이 사건 수사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러니 검찰 수사가 공정하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