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개헌안을 준비해 왔던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12일 정부 개헌안 초안을 확정했다. 13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될 초안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 수도(首都) 조항, 지방분권 강화가 포함되고 헌법 전문(前文)도 일부 개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여권이 독자적으로 추진해 온 내용으로,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제왕적 대통령 권한 축소'는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곧바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개헌 추진의 초심은 사라지고 정치적 갈등만 일어나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개헌안을 마련 중인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이 12일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위는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한다.

최근까지의 개헌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4년 중임제' 입장을 밝히면서도 '제왕적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을 조정하고 삼권 분립 속에 협치를 도모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자문특위의 개헌 초안은 현행 권력구조(대통령제)는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임기만 현행 '단임 5년'에서 '연임 8년 가능'으로 늘렸다.

야당은 대통령 권력 분산을 위해 '국회에 총리 추천권 보장' 같은 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각종 권력기관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자는 방안도 거론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국회가 권력구조 개편에 합의를 못 할 경우 지방분권처럼 이견이 없는 부분만 먼저 개헌을 하자"고 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야당은 대통령의 개헌 발의에 부정적이다. 최근에는 정의당에서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순간 개헌은 물 건너간다"는 말이 나왔다. 야권에서는 "야당이 이토록 반대하는데 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이면 오기의 정치밖에 안 된다"며 "그런데도 독자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것은 개헌 무산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고 그걸로 지방선거를 치르려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했다. 개헌안이 발의되기도 전에 갈등에 휩싸이는 모습이다.

이날 국회 헌정특위에서도 여야가 충돌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6월 13일로 개헌 국민투표 데드라인을 정하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회의 책임과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대통령 발의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권한인데 발의 여부를 두고 (국회가)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그럴 권한도 없다"고 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한국당은 개헌은 물론 개헌 시기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고 있다"며 "야당이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대통령 권한의 개헌안 발의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 국회 상황으로 볼 때 '6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 동시 실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한국당이 반대하는 데다 바른미래당도 '대통령 권한 분산'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최근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약 안 된다면 차선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6월 지방선거 전 여야가 개헌안에 합의하고 국회 표결과 국민투표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했다. 정 의장은 각 당에 "대통령 개헌안 발의 전에 당 개헌안 초안을 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공약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당은 다음 주 중 개헌안을 확정해 공개할 방침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정 의장의 절충안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