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물러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2004년부터 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약칭 방진회장)을 맡아온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이 오는 9일 이사회에서 회장직을 사임한다.

조 회장은 지난 6일 김포공항 인근 대한항공 본사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4년간 방위산업으로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의 가치를 내외부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14년 만에 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직을 내려놓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6일 “방산(防産)기업들이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방산기업들이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방산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즉 생산물량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지요."

그가 방진회장을 맡는 동안 한국 방위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2004년 4조6440억원이던 국내 방산 매출액은 2016년 14조8163억원으로 4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방산 수출액은 4억 달러에서 32억 달러로 8배 증가했다. 171개이던 회원사 숫자는 지난해 643개사가 됐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 방산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지적하며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조 회장은 특히 "우리 군에선 무기의 요구수준(ROC)을 너무 높게 잡는데 이는 어린이에게 자동차 운전을 요구하는 격"이라고 했다. 세계 최강 무기를 만드는 미국도 M-1전차 등 기존 무기체계를 계속 개량하는 '진화적 개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산화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미국 보잉사 여객기도 엔진 등은 다른 회사가 만든 것을 사용하듯 체계통합 능력이 중요합니다."

조양호 회장이 1970년대 육군 7사단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모습.

조 회장은 방산비리에 대해 "지금까지 드러난 방산비리는 대부분 해외무기 중개상의 비리였다"며 "개발과정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하자나 시행착오도 비리로 매도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방진회장 재임 중 미국의 유명 테크노스릴러 작가인 톰 클랜시의 '붉은 10월' 등 무기와 신기술을 다룬 책들을 번역해 회원사에 소개하고 중소기업 지원에 앞장섰다. 최전방 부대를 찾아 제설(除雪)기 7대도 기증했다.

조 회장은 1971~73년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최전방 육군 7사단 수색중대에서 34개월간 병사로 복무했다. 그는 "당시 겨울에 엄청나게 쌓인 눈을 치우는 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해 눈 치우는 기계를 기증했다"고 했다. 그는 현역복무 중 베트남에서 10개월간 파병근무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6·25전쟁을 다룬 책을 읽는 데 푹 빠져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을 읽은 뒤 6·25전쟁 격전장의 하나였던 지평리 전투 기념관을 방문했다가 시설이 낡은 것을 보고 리모델링을 위한 모금사업도 벌이고 있다.

한·불 경제협력위 위원장도 맡고 있는 조 회장은 "지평리 전투 기념관을 자주 찾는 미국·프랑스 외교사절 등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기념관 리모델링을 방진회장의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