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잘 지은' 공공건물들이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다. 모양은 물론 쓰임새까지 꼼꼼하게 따져 지은 건물이 늘었다. 관(官)에서 짓는 건물이 건축계 내부에서조차 관심을 끌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국내외 건축상 수상작 목록에도 소규모 공공건물이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민센터, 어린이집, 마을회관, 공원 화장실 같은 공공건물들은 그동안 '건축 사각지대'에 있었다. 짓는 쪽에선 디자인보다 예산 절감이 우선이었다. 그 결과 좋게 말해 무난하고 조금 덜 좋게 말하면 볼품없는 건물이 수없이 들어섰다. 쓰는 쪽에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이제 공공건물에도 건축 디자인이 당연 요소가 되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 설계로 서울 보라매공원에 지은 미화원 쉼터. 1층에 상자 모양 창고 공간을 띄엄띄엄 배치하고, 휴식공간과 샤워실 등이 있는 2층은 콘크리트 벽에 목제 차광판을 붙여 입체감을 살렸다.

서울 대방동 보라매공원 내의 2층 건물은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고급 주택이다. 1층은 검은 콘크리트로, 2층은 콘크리트에 목재 루버(긴 널빤지 모양 차광판)를 붙여 마감했다. 건물 가운데엔 작은 정원도 있다. 공원 청소 노동자들이 쉬고, 씻고, 청소 도구를 보관하는 곳임을 한눈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용도의 건물이 열에 아홉은 샌드위치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혼자 튀기보다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꾀했다. U자형 건물은 바로 뒤의 야트막한 언덕을 팔 벌려 껴안는 듯한 모양으로 놓여 있다. 설계자인 건축가 유현준씨는 "건물을 조금 뒤로 물려서 앞쪽에 서 있는 오래된 소나무 4그루도 살렸다"고 했다. 작년 서울시건축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각각 우수상을 받았고 미국 시카고 아테나에움 국제건축상도 수상했다.

외벽을 뒤덮은 사선 차광판으로 소방 업무의 속도감을 표현한 서울 면목동 119안전센터.

건축가 이용주가 작년 말 완공한 서울 면목동 119안전센터는 '소방서는 빨간색'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소방차 차고가 있는 1층만 빼고 2~4층 외벽이 흰색 사선 루버로 뒤덮여 있다. 소방서에선 누구나 소방서임을 한눈에 알도록 '소방서 티'가 나길 원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건물을 빨갛게 칠하거나 '119' 간판을 강조하는 대신 사선의 속도감으로 신속함이 생명인 소방 업무의 특징을 표현했다. 루버는 외부의 빛을 적당히 걸러 주는 역할도 한다.

작은 집 여러 채가 모인 듯한 모양의 서울 월계동 어린이도서관 ‘한내 지혜의 숲’.

건축가 강제용·전종우가 작년 서울 미아동에 지은 마을회관 '양지마을 사랑채'는 공공건물다운 개방성이 돋보인다. 이 건물은 어린이 공원과 붙어 있다. 공원은 축대 위에 있어서 주변 길에서 접근하기 불편했다. 두 건축가는 마을회관 앞길과 공원을 연결하는 골목을 부지에 내고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다. 작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젊은건축가상'을 받은 이들은 서울 사당동에 지은 노인회관 겸 도서관, 흑석동 고구동산 공원 화장실, 강원 정선군 지역아동센터 같은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건축가 장윤규·신창훈이 설계한 서울 월계동 어린이도서관 '한내 지혜의 숲'도 작년 서울시건축상 대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거리마당상(문체부장관상), 한국건축가협회 선정 '베스트7'을 수상했다. 박공지붕 집이 오밀조밀 모인 듯한 외관, 벽을 최소화해 개방성을 높인 실내 공간 구성이 높이 평가받았다.

한국의 도시에서 미적·기능적으로 완성도 높은 건물은 여전히 주택이나 상업시설 같은 사적 영역에 집중돼 있다. 공공 건축의 변화는 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건축가 이용주는 "특히 소규모 건물들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보고 이용하는 시설이 많아서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