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강남 집값을 잡는 데 총력을 쏟는다. 강남 집값이 올라가면 전국의 집값이 같이 올라갈 것을 염려해서다. 이런 정책의 바탕에는 강남 집값만 잡으면 다른 지역이 고루 발전할 거라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1등이 없어져야 나머지가 산다’는 논리는 어느 시대에나 인기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등이 사라지면 지금의 2등이 1등이 되는 걸로 끝날 확률이 크다. 몇 년 전 국토 균형 개발을 위해 서울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켰다. 지방 도시에 옮겨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신도심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인구 분산 효과는 미비하고 주변 구도심의 인구 이탈 문제를 야기했다. 큰 꿈으로 시작한 세종시는 현재 대전 인구를 빼가고 있다. 서울을 죽였지만 지방은 살지 않았다. 강남을 잡는다고 다른 곳이 반드시 사는 게 아닌 것이다. 혹자는 강남 집값 문제의 해결을 공급 확대에서 찾는다. 판교 공급을 통해 분당 아파트값이 떨어졌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개발 정책은 강남의 성공 공식을 카피한다. 자연녹지를 택지로 개발해 땅장사로 돈을 벌고 새 아파트를 짓고 사람을 이주시킨다. 우리는 이 방식으로 강남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분당·일산·판교·세종시와 각종 도심을 개발했다. 강남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고 강남처럼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김희선처럼 성형수술을 하고 김희선 같은 연예인이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발 연예인 지망생은 김희선처럼 성형수술을 하면 안 되고 전지현, 전소민 같은 개성 있는 자신만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연기자가 될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자신도 강남처럼 개발하고는 강남이 문제고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는, 자신은 김희선처럼 수술을 하고 나서 김희선에게 은퇴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상은 강남 개발 방식으로 반복한 게 강남을 더 키워주는 꼴이 되었다. 지방 부동산 광고 전단에는 ‘OO의 강남’이라고 광고한다. 짝퉁이 만들어지면 진품의 가치만 올라갈 뿐이다. 서울 홍대 앞의 인기는 강남 못지않다. 사람들은 서울 익선동과 부산 감천마을도 좋아한다. 이들은 강남을 흉내 내지 않는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고 있다. 홍대 앞은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익선동은 아파트 단지 대신 마당과 골목길을 가지고 있다. 신도시가 똑같은 강남 방식으로 양산되면 지역별로 줄 세우기만 될 뿐이다. 후발 주자일수록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가들과 부동산업자들이 강남만 따라 하게 두지 말고, 재능 있는 건축가들을 제대로 고용해 지역성이 드러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진주는 진주다운 도시를, 속초는 속초다운 도시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앞선 지역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이고 지역 균형 개발이다. 너무 높은 강남 집값은 문제다. 그러나 비싼 집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강남 문제의 본질은 폐쇄성이다. 강남에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가게만 있다. 명품숍들의 입면은 창문보다는 벽으로 되어 있다. 재개발된 대형 아파트 단지는 벽으로 둘러싸여서 외부인이 통과하기 어렵다. 강남에는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도 공짜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맨해튼에 집이 없는 뉴저지 사람도 뉴욕의 공원과 거리를 값싼 핫도그를 먹으면서 즐길 수 있다. 수요일 저녁에는 뉴욕현대미술관도 무료입장이 되고 광장의 벼룩시장은 누구나 이용한다. 그들은 뉴욕을 ‘자신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강남의 거리에는 돈 없이도 갈 곳이 많아져야 한다. 자동차 중심보다는 보행 친화적인 거리가 관통해 옆 동네에서도 편하게 올 수 있어야 한다.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만든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블랙팬서’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한창 경제가 발전하던 시절에는 열심히 한강의 다리를 건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의 담장 벽을 더 열심히 짓는다. 이 벽을 허물고 이웃 지역과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될 때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차이는 줄어들 것이다. 소통을 늘리고 지역의 개성을 찾아가면서 지역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고 ‘우리의 도시’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