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경기도북부소방 재난본부장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소방관들이다. 그런 소방관들은 누가 구해줄까. 소방관들은 직업 특성상 소방 활동 현장에서 강해야 한다. 그래야 귀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도 인간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건강 관리를 하더라도 감기에 걸릴 수 있다. 소방관은 특히 마음의 감기,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많이 노출되며 또 걸린다.

이 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에서 잘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섭고 고통스러운 병이 PTSD다. 당사자인 본인은 매우 힘들고 아프다.

소방관은 직무 특성상 살인, 폭력, 자살, 교통사고 등 충격 사건 사고를 수시로 경험하며 정신적 손상의 위험이 높다. 각종 연구 결과에서도 소방관을 '스트레스 고(高)위험군'으로 지정할 정도로 직무 스트레스가 높다.

옛 국민안전처가 낸 자료를 보면, 소방관들은 일반인에 비해 PTSD 발병률이 10배, 우울증은 5배, 수면장애 4배, 알코올성 장애는 7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도 세월호 사고 당시 중앙119구조단장으로 현장 총책임자를 하며 많은 충격을 받았고 PTSD를 겪게 됐다. 이후 초기에 치료받기를 미루다 시기를 놓쳐 지금은 만성화돼 고착화된 상태다.

소방관들은 "내가 아프다"라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없다. 스스로 나약한 소방관이 될까봐 두렵고, 직장 내에서는 낙인이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중견 간부들도 주위에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앓다가 병세가 깊어졌는데 일선 소방관들은 오죽할까.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전체 소방관 가운데 25%가 PTSD를 겪고 있었다. 해당 질병을 겪는 소방관들이 상담하고 치유받을 수 있는 조직 내 전문 상담 조직이 꼭 필요하다. 잠재적 PTSD 위험 직종인 소방관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거점형 전문치료센터' 조직 신설과 전문 상담팀 인력 확보도 시급하다. 소방관이 건강해야 국민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