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이 2일 서울 양재동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2일 “북한이 핵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는 체제 생존이 아니라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원장은 이날 서울 양재동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북핵은 체제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핵은 방어적 성격이 아닌 공격 용도”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를 제3자처럼 관여하고 있다. 북핵이 우리 국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위협에 대한 인식이 전혀 안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는) 북핵 위협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주사파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2007년 이후로 10년 동안 북핵 상황은 급변했는데 변화를 인정하지 않은 채 현 정부는 ‘어게인(Again) 2007’모드”라고 했다.

윤 전 원장은 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한 것과 관련 “북한이 대북 제재를 깨겠다는 의도를 갖고 파견했다”며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과정에서 유엔 대북제재에 흠집을 냈다. 이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북 제재를 요청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이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억지력이 있어야만 중장기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틀이 짜진다”며 “미국이 동해에 핵탄두를 실은 공격형 미 잠수함을 한 기 배치하고, 한·미·일 3국이 공동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국제제재의 틀이 견지돼야 한다”며 “지금 김정은은 굉장히 초조하고 다급한 상황이다. 한·미 군사훈련을 구실로 미사일을 쏠지, 트럼프의 최대 압박에 굴복해 대화에 나올지 갈림길에 서있다”고 덧붙였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이 2일 서울 양재동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초부터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굉장히 초조하고 다급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이 연쇄적으로 핵 실험과 군사 도발을 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풀가동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펴고 있고, 군사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한국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초조한 김정은’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나.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다녀갔는데, 북한에선 마치 구국의 영웅이 온 것처럼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다. 이 것만 봐도 김정은이 매우 다급한 상황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진행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라고 본다. 북한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또 한·미 관계 균열과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옵션’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장사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와튼스쿨을 나왔는데, 와튼스쿨에선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이 필수교재다. '어떻게 협상을 해야 하느냐' 하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최대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략으로 중국과 일본, 한국을 다루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압박을 가하자 시진핑이 몇천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만들었다. 북한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북한에 좀 더 큰 압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북한이 느끼는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대화파인 빅터차 주한미국대사 내정자가 낙마하면서 김정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은퇴도 빅터차 낙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나.
▲조셉 윤 특별대표의 경우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인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론 속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한 것으로 보이지만 은퇴할 시점이 돼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는 게 무슨 뜻인가.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면 그것으로 미국과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북한으로선 괌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그들 대부분의 전략적 목표는 완성된다. 그러면 북한은 미국에게 미국까지 타격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는 대신 지금까지 갖춘 핵 능력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 김일성 일가가 지난 3대에 걸쳐서 했던 핵 개발의 목표다. 그런데 김정은이 고민에 빠졌다.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호’ 발사에 성공한 뒤, 불과 1년 사이에 화성-14호, 화성-15호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화성-15호는 정상 궤도로 발사하면 워싱턴, 뉴욕까지 타격할 수 있다. 5~6년은 더 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1년만에 실험이 성공하면서 북한의 계산이 달라졌다. ICBM을 완성하면 미국과 국제사회에 더 세게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지금 당장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지, 아니면 ICBM을 완성한 뒤 더 큰 것을 노릴 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이 만나려다가 2시간 전에 취소한 것도 김정은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ICBM을 완성하려면 두세차례 더 실험이 필요하다. 만약 실험을 진행하면 평창 이후의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흔들리는 상황일거다. 한·미 군사훈련을 구실로 미사일을 쏠지, 트럼프의 최대 압박에 굴복해 대화에 나올지 갈림길에 서있다고 보면 된다.”

(왼쪽부터)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문재인 대통령,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월 10일 청와대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북핵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정부는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고 하고, 이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핵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즉 북한이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이 자위용이라는 말을 했다. 즉 우리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거다. 미·북대화가 열리면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 폐막식 때 류엔둥(劉延東) 중국 부총리 만나서 “미국이 대화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문 대통령의 언행은 우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재자이지, 당사자는 아니다는 모습이다. 국제사회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 제3자처럼 보인다. 북핵이 우리 국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위협에 대한 인식이 전혀 안보인다. 남북관계가 잘되면 모든게 잘 풀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착한 정부 컴플렉스’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착하다기보다는 순진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재 청와대 주류를 보면 운동권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의식엔 ‘북한은 적이 아니다. 미국이 적이고 민족 협력을 통해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북핵 위협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주사파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2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대북인식을 그대로 갖고 오고 있다. 2007년 이후로 10년 동안 북핵 상황은 급변했는데 현 정부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은 채 ‘어게인(Again) 2007’모드다.”

-미국이 ‘적절한 조건’에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했는데. ‘적절한 조건’이란 어떤 수준을 말하는 걸까.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의사 표명을 해야한다. 북한이 ICBM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이런 것들을 토대로 미·북대화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바로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이에 대해선 아무런 해결방안이 없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면 야단이 나서 유엔 결의안을 만드는데,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은 도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창 올림픽 개막 전날 북한은 열병식을 진행했는데, 우리는 애써 북한이 축소해 진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생중계만 안했을 뿐, 규모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 열병식엔 미국을 겨냥한 ICBM도 나왔지만 한국을 겨냥한 미사일들이 세대 교체됐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조선중앙TV가 8일 녹화 중계한 '건군절' 열병식에는 신형 지대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등장했다.

-현무와 유사하게 생긴 미사일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현무’와 닮은 이 미사일은 우리가 구축하려는 ‘킬체인’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다. 우리 군의 킬체인은 북한의 도발 징후를 30분 전에 파악해서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사용했다. 이 미사일들은 발사 직전 액체연료를 주입하는데 30~40분이 소요됐다. 이 시간이면 미사일 위치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새로 개발한 단거리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발사체에서 튕겨져 나온 뒤 엔진에 점화되는 냉발사(Cold Launching) 기술까지 갖춰 적외선 위성으로도 파악이 어렵다. 거기에 이동 발사대까지 사용한다. 미 합참 차장에 의하면 예전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에 대응하기까지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12분에 불과하다. 이처럼 북한 위협의 실체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우리 정부는 마치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제 3자인양 행동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우리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인가.

“강 건너 문제로 봐선 안된다. 우리의 킬체인으로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문재인정부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했다. 제대로 간다고 보고 환영했다. 그런데 국방비를 늘려서 뭐하나 봤더니 가장 먼저 사병 월급을 늘리더라. 사드를 배치하긴 했지만 평택 이남만 사드 보호권이다. 평택 이북, 2300만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은 완전 무방비다. 사드급 포대를 추가 도입하면 되는데, 중국 눈치 보느라 도입을 못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을 당장 어떻게 억지하겠다는건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부터 도입할 것이다.”

-북한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대표단으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보냈다. 이건 의도가 담긴 것 아닌가.

“당연하다. 대북제재를 깨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대북제재를 깨기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이번 참가 과정에서 유엔 대북제재에 흠집을 냈다. 500여명 보내면서 육해공 길을 열었다. 인사도 제재 대상을 보냈다. 정부는 ‘올림픽에 한해 예외 적용’이라고 하지만 원칙이란 한번 깨지면 언제든 예외가 생길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북한 제재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의아한 것 중 하나가 미국쪽에서 대북제재 예외 조치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을까?

“제재 주체는 유엔 회원국이다. 회원국의 주권적 결정이다. 미국 측에선 우려 목소리를 낼 순 있지만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었을 것이다. 미국입장에선 ‘너희 할 수 있는 것 한번 해봐라’ 식의 마인드였을 것이다. 너희가 해서 잘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가 바탕이 됐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 안된다면 미국이 갖고 있는 ‘플랜B’로 가려는 생각으로 보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미북 대화 가능성이 계속 오르내린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별로 안 다뤘는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서훈 국정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CIA국장, 그리고 북한과의 채널이 가동됐다. 물론 만남은 대화 2시간 전 북한이 차서 무산됐지만 남·북·미 간의 채널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펜스 부통령은 이번 방한 기간 탈북자를 만나고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김여정 일행과의 만남이 예정된 상황에서 왜 그랬을까.

“미국이 주창하는 ‘최대한의 압박’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김여정이 돌아간 뒤, 김영철이 왔다. 남북간 이야기가 상당히 진전됐을 것이라 보나.

“문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대화 문턱을 낮추라’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건 남북간에 상당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증거다.”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가 계속된 2017년 12월 6일 한반도 상공에서 미국의 장거리전략폭격기 B-1B '랜서' 1대와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함께 편대비행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합동군사훈련 연기하거나 취소할 것으로 보나?

“문정인 특보가 미국에서 ‘미북대화가 열리면 미국이 조건을 낮춰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군사훈련은 사실 아주 미미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게 마치 큰 문제인 것처럼 우리가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이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빌미가 된다.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논리의 일환이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사실 관심이 없다. 다만 이것을 명분으로 삼을 뿐이다.”

-한미군사훈련은 한미 관계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 효과보다는 정치적 메시지라고 할까.

“군 관계자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훈련을 해야 작전대로 움직일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군사훈련을 문제 삼는데, 훈련을 중단한다고 해서 핵을 포기하느냐. 북한은 한번도 그런적이 없다. 90년대 초 남북간 협상 과정을 지켜봤는데, 당시 북한이 IAEA 사찰 조건으로 세가지를 걸었다. ‘핵으로 협박하지 마라’ ‘미국 전술핵을 철수하라’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라’ 당시 한미 정상은 이 조건을 다 받아줬다. 하지만 북한은 계속 핵을 개발했다.”

-북한이 그토록 핵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핵과 관련해 우리의 잘못된 시각이 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건 체제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수세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전제가 잘못됐다. 지금까지 모든 협상이 그렇게 진행됐다. 제네바 합의도 그렇고 북핵 대화에선 경제 원조, 평화협정, 북미관계 개선 등 ‘체제 생존 패키지’를 제공했다. 그런데 북한은 어땠나. 그 조건을 다 수용하면서도 핵개발을 지속했다. 이건 북한은 상대방이 제공하는 패키지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북핵은 방어적 성격이 아니라 공격 용도다. 김일성은 1965년 함흥군사학원 개원식에서 ‘또 한번 조선전쟁이 발발하면 미국과 일본이 개입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미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3대에 걸쳐서 핵·미사일 개발을 해왔다.”

-북핵은 생존이 아니라 적화통일에 목표가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북핵을 바라보는 전제가 바뀌어야 한다. 핵은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건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다. 억지력이 있어야 중장기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틀이 짜진다. 그리고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국제제재의 틀이 견지돼야 한다. 북한에 핵을 포기하지 않는게 전략적 손실이란걸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대화를 하는데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는 게 문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가 하나도 없다. 지금 정부도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 써버렸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북한을 흔들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나.

“그나마 남은 게 북한인권 카드다. 그런데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가서 발언을 했는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북한인권에 대해 맨 말미에 아주 조금 다루고 끝이었다. 그 문제를 우리가 못살리면 안된다.”

-레버리지를 다 썼다고 하는데,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적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의견을 어떻게 보나.

“만약 미국이 우리를 버린다면 자구책으로 핵을 가질 수 밖에 없겠지.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우리 국민들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드 도입하는 과정에서 성주 주민을 설득 못한 정부가 핵을 우리나라 영토에 배치하는 걸 설득할 수 있을까. 정치적 부담이 있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술핵 재배치가 북핵 억지력 카드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전술핵이 북핵 대응 카드가 못된다는 말인가.

“전술핵은 폭격기나 전투기에 핵폭탄을 실어서 투하하는 무기 체계다. 이건 선제 공격용이지, 북한의 핵 도발에 맞선 억지 카드는 못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억지력으로서의 핵이다.”

-억지력으로서의 핵 카드라면?

“현재 한반도 주위엔 핵이 없다. 다 미국 본토에 가 있다. 미국 공격형 잠수함에 크루즈 미사일이 탑재돼 있지만 여기에도 핵탄두가 없다. 난 미국이 동해에 핵탄두를 실은 공격형 미 잠수함을 한기 배치하고, 한·미·일 3국이 공동관리하는 방안이 어떨까 생각한다. 최근 미국 전문가들을 만나면 이런 제안을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서 ‘3노(NO)’를 했다. 그 중 하나가 ‘한·미·일 군사 동맹은 안한다’였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기 어려워졌다.”

-문 대통령이 조만간 대북 특사를 파견한다. 대북 특사로 갈 사람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에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

-북한통보다는 대미라인이 가야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대미라인이 적절하다. 현재 언론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정도의 사람이면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국정원장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모습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서훈 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대화를 위한 조직은 통일부니까 통일부가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번 남북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색적인게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주요 4강 대사들에게 남북대화 진행상황을 브리핑하더라. 대외관계는 외교부가 챙겨야 하는거 아닌가. 이럴거면 외교부라는 조직이 왜 있는 것이냐.”

-사실 이번 남북대화 진행 과정에서 국정원, 통일부, 외교부 역할이 혼재됐다. 특히 외교부는 거의 ‘패싱’ 상태였다.

“남북문제라는 특수성도 있긴 하지만, 외교부가 해야 할 일을 안하고 있다. 아귀가 잘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대표단을 태운 차량이 27일 출경을 위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서 북으로 출경하고 있다.

-대북특사가 갖고 갈 메시지는 무엇일까.

“북한이 궁극적으로 비핵화 할 의사가 있는지 얘기를 해야한다. 개인적으론 특사가 중재자의 역할이 아닌 당사자로서 활동하길 바란다. 우리를 겨냥한 미사일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비핵화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남북정상회담은 열리게 될까.

“문재인정부에선 어떻게든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다루지 않는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역풍이 클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미북회담이 열리는 가운데 정상회담을 하고 싶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미북회담으로 미루고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

“일단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거절하기 힘든 오퍼인 정상회담까지 풀어놓았다. 우리는 어정쩡 끌려가는 상황인데, 여기서 어떻게든 미북대화만 열리면 문재인정부는 ‘우리가 대화를 중재했다. 해야할 일은 했다’ 식으로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시키면서, 북핵은 미북대화에서 다루는 투트랙 방식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북한의 본질적인 문제를 빼놓는 결과를 낳는다.”

-미북 대화가 핵폐기가 아닌 동등한 핵보유국으로서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는 군축회의로 진행될 가능성은 없나. 북한은 계속 군축회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단계적 비핵화로 진행하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단속을 해야한다. 핵보유국으로서 핵을 관리하는 미북대화로 진행되면 최악이다.”

-핵폐기는 현장 실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은 실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할까.

“그래서 지금 미국은 북한의 말장난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에서 서로 합의했다고 해서 바로 제재를 풀어선 안된다. 핵폐기를 확실히 확인한 후에야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부지하세월일테니 억지력을 먼저 갖춰야한다.”

☞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 1991년 국립외교원에서 조교수로 시작한 윤덕민 전 원장은 27년을 국립외교원에서 근무했다.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으로 취임해 2017년 5월까지 만 4년을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했다. 윤 전 원장은 “역대 국립외교원장 중 최장기 원장”이라며 “유일하게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