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스님이 한 철 사신 덕에 설악산은 더욱 높아지고,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

"한 30년 사판(事判) 생활 '탐관오리 짓' 하면서 쌓은 업장(業障)이 많이 소멸된 것 같습니다."(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

1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백담사. 두 스님은 석 달간의 동안거(冬安居)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복기(複棋)하고 있었다. 두 스님은 무문관 옆방 동료였다. 무문관은 2~3평짜리 독방에서 석 달간 혼자 수행하는 공간. 세상과 소통은 '밥구멍'을 통해 매일 오전 11시 들어오는 식사가 전부다. 전할 말이 있어도 이 밥구멍에 메모지를 올려놓는다. 자승 스님이 안거에 참가한 것은 1980년대 후반 통도사 안거 이후 30여 년 만이다.

석 달만에 만난 ‘無門關 이웃’ 백담사 무문관 옆방에서 석 달간 수행한 신흥사 조실 무산(오른쪽) 스님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 헤어지기에 앞서 두 스님이 지난 동안거를 회고하며 웃고 있다.

옆방 발걸음 소리, 기침 소리까지 예민해지고 인기척이 반가워지는 무문관. 무산 스님은 "자승 스님 방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자승 스님은 "안거 중 이틀 동안 무산 스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이틀째엔 걱정이 됐다. 주지 스님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이 말을 받아 "자승 스님 말씀이 맞다"고 했다. 안거 기간 중이던 작년 12월 말 직지사 조실 녹원 스님이 입적해 영결식에 다녀오느라 이틀간 살짝 무문관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제가 어릴 때 녹원 스님 도움을 많이 받아 피치 못하게 영결식에 다녀왔다"고 했다.

석 달간의 무문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매긴 성적은 어땠을까. 80대 중반의 무산 스님은 선문답(禪問答)으로 답을 대신했다. "밤에 눈을 끄먹끄먹하면서 '이놈이 살았나 죽었나'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 가고, 한 달 가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자승 스님은 "체중이 12㎏ 빠졌다"고 했다. 무문관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밥, 국, 반찬, 과일, 요구르트 등 단출하다. 처음엔 들어오는 대로 다 먹다가 점차 음식량을 줄여 나중엔 밥 반 공기와 야채만 먹었더니 한때 체중이 16㎏까지 빠졌다고 했다. 그는 "총무원장 물러난 후에도 마음속으로 여러 계획이 있었다"며 "그러나 무문관 생활 1주일 만에 그 모든 것이 허물이고 착각이란 걸 깨달았다. 이제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두 스님은 각각 비우고 채운 것이 그득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해제 법회에 참석했다.

내설악 일대에는 올겨울 내내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랬던 하늘이 2월 28일 저녁부터 함박눈을 쏟아부었다. 마치 선승(禪僧)들의 발길을 붙들려는 듯 폭설은 1일 새벽까지도 계속됐다. 국립공원 입구부터 백담사에 이르는 7㎞ 산길은 막혔다. 덕택에 이날 오전 10시 동안거 해제 법회는 눈부신 설경(雪景) 속에 열렸다. 외부인은 거의 올라오지 못했고 무문관 참가자 10명, 무금선원과 기본 선원 참가자 40명 등 스님 70명만 참석해 담백한 분위기였다.

무산 스님은 법문을 통해 안거 참가자들에게 달마와 제자 혜가의 일화를 소개했다. 혜가가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자 달마는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혜가가 "마음을 못 찾겠다"고 하자 달마는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히 해줬다"고 답했다는 선종(禪宗)의 유명한 화두(話頭)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무산 스님의 법문은 불과 3분 만에 끝났다. 무산 스님과 선승들이 이심전심으로 통하기엔 충분한 시간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