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재연기’하는 방안을 미국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최근 평창올림픽으로 남북 간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고 판단한 현 정부가 평창 패럴림픽 폐막 직후 실시하기로 한 한·미 군사훈련을 다시 한번 연기하자고 나선 것이다. 북한도 선전 매체를 동원해 연일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훈련 연기는 절대 없다”고 하고 있다. 국방부는 훈련 연기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훈련 연기를 협의한 바 없다”고 했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27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최근 한·미 군사훈련을 재연기 하는 방안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더힐은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 대표단과 한국 정부 당국자 간 면담에서 관련 대화가 오갔다며 이같이 전했다.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상원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상·하원 대표단은 지난 23일 방한해 강경화 외교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을 만났다.

미 공화당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왼쪽)이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현 정부 핵심인사들은 최근 김여정·김영철 등의 방남(訪南) 이후 한·미 군사 훈련 관련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제네바 군축회의에 참석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기회가 닿고 시간이 나면 대화 상대인 틸러슨 장관과 얘기를 하려 한다”며 “조만간 성사되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강 장관은 “(한미 군사 훈련이 예정된) 4월에 중요한 계기가 있으니 전이든 후든 뭔가 형성이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있고 미국에게도 있다”고 했다. 빠른 시일 내에 방미(訪美)해 한미 군사 훈련 관련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연기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4월 첫주에 재개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훈련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문 특보는 “그러나 만약 한미군사훈련 이전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대화가 있다면 일종의 타협이 될 수 있다”며 “나는 개인적으로 군사훈련이 재개되기 전에 북미 간 회담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이와 관련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그 사람(문 특보)은 그런 것을 결정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미 군사 훈련 연기설에 대해 “맞다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틀리다고 얘기하기도 그렇다”고 했다. 의견은 다소 엇갈리지만,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모두 간접적으로 한·미 정부가 군사 훈련 연기 문제를 논의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훈련 연기는 없다고 못박았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훈련 지연 가능성은 없다”며 “한미연합훈련과 올림픽이 중복되지 않도록 결정 내린 것은 올림픽 정신 존중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고 했다.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 방한단장이었던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상원의원 측은 “‘미국이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를 한국 측으로부터 들었다”며 “그들(한국)은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고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펼치니까 ‘허니문’ 기간인 것처럼 정말 (북한과의 관계가) 좋게 진전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인호프 의원 측은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그들이 개발 중인 핵 능력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논란이 계속되자 한미 연합 훈련 연기 논의설을 일단 부정했다. 국방부는 이날 “지난 23일 국방부 장관은 (인호프 의원 등) 미 의회 대표단과의 면담시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미관계에 대해 논의했으나 연합훈련 추가 연기 관련 협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매년 2~3월 연례 합동군사훈련인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시기가 겹치면서 훈련을 연기한 상태다. 북한은 한·미 군사 훈련을 ‘북침 연습’이라고 주장하며 “중단하라”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