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일)~3월 2일 본당(성당) 사정으로 인하여 미사는 없습니다. 인근 성당을 이용해 주십시오.'

25일 오전 수원 광교1동 성당. 주상복합 건물에 입주한 이 성당 문은 닫힌 채 이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성당 한모 주임신부가 7년 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여성 신자를 식당에 가두고 성폭행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 '정직(停職)'되면서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것. '미투' 사태가 종교계까지 번진 현장이다.

천주교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고(故) 이태석(1962~ 2010) 신부가 활동했던 남수단이어서 충격은 더욱 크다. 2008~2012년 현지에 파견됐던 한 신부는 이태석 신부를 다룬 다큐 '울지마 톤즈'에도 출연했고, 교계 신문에도 기고문을 싣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이었던 한 신부는 지난해 12월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과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국기자회견에도 참여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25일 사과문을 통해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이날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특별 사목 서한'을 발표, "그동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오신 피해 자매님(여성)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번 일을 거울삼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릇된 것들을 바로잡아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구장 사죄에도 한 신부에 대한 징계가 사제직을 박탈하는 '면직(免職)'이 아니라 일시적 성무 집행 정지인 '정직'으로 결정된 것을 두고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공연계에서는 새로운 '미투' 선언과 사과문 발표가 이어졌다.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으로 유명한 연출가 윤호진 에이콤 대표(70)는 24일 성추행 의혹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사과문을 내고 "피해자 분의 입장에서, 피해자 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드리겠다"며 "저의 거취를 포함하여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겁게 고민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1992년 에이콤을 설립한 윤 대표는 '명성황후'를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등 '한국 뮤지컬계의 대부'로 불려왔다.

같은 날 배우이자 제작자인 조재현(53) 수현재컴퍼니 대표도 성추행을 시인했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30년 가까이 연기 생활 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다"며 "전 죄인이다.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소셜 미디어에서 성추행 의혹이 거론된 지 하루 만이다. 조재현은 'DMZ 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사직하고 OCN 드라마 '크로스'에서도 하차한다.

25일엔 극동대 교수 재직 당시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폭로된 연극배우 한명구(57) 서울예대 교수도 "잘못 행동하고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며 "서울예대 교수직과 예정된 공연 등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소나무'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68)씨도 서울예대 교수 시절 학생들을 성희롱·성추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점이 더욱 괴롭고 부끄럽다"며 공식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