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우리의 메시지를 들었다면, 너무 늦기 전에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시리아 동(東)구타 ‘대학살’ 현장에 살고 있는 누르(10)와 알라(8) 자매의 절규다.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밤부터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 지역인 동구타 지역에 무차별적인 공습을 퍼붓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동구타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이 이어진 나흘 동안 300여명이 사망했고 1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중에는 58명의 어린이 희생자도 포함됐다. 이는 2013년 시리아 정부군이 동구타에 화학무기 공격을 벌인 이후 최대 규모라고 허프포스트(HuffPost)는 21일 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이날 동구타의 상황을 ‘지구 상의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누르(왼쪽)와 알라(오른쪽) 자매가 2018년 2월 20일 동구타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서로를 껴안고 있다.

◇ 누르-알라 자매·무함마드 나짐, ‘지구 상의 지옥’ 동구타의 산 증인 되다

누르와 알라 자매는 영어 선생님인 엄마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트위터에 ‘SaveGhouta(구타를 구해달라)’라는 해시태그(#)를 적어 영상을 올리고 있다. 자매가 올린 영상에는 공습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매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 공동 수도에 물이 나오지 않는 동구타의 상황, 자매가 동구타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15세 소년 무함마드 나짐도 자신들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나짐의 꿈은 기자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동구타 지역의 피해 상황과 피해자들의 모습 등을 영상에 담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올리고 있다.

나짐은 폭격으로 인한 연기와 먼지로 뒤덮인 동구타 거리와 옥상, 공습으로 무너진 병원과 학교 등 처참한 현장을 찍고, 직접 영상에 출연해 상황을 설명하거나 심경을 토로했다. 나짐이 영상을 찍는 도중 정부군의 공습으로 인한 폭발음이 들리거나 흰색 병원차로 사상자를 운반하는 모습, 시리아 정부군의 것으로 보이는 전투기가 동구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동구타 건물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 등이 포착되기도 했다.

나짐은 영상과 글을 통해 “어제 지하 보호소에서 함께 놀던 내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전투기 공습으로 죽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침묵에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바샤르 알 아사드(시리아 대통령), 푸틴(러시아 대통령),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가 시리아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며 동구타 공습을 자행하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측 지도자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 전 세계 언론, 아이들 호소 주목

전 세계 언론은 시리아 아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영국의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누르, 알라 자매와 나짐의 사연을 전하면서 “동구타의 아이들이 폭격 아래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SNS에 말하고 있다”고 했다.

누르(왼쪽에서 두번째)와 알라(오른쪽에서 두번째) 자매가 2017년 11월 25일 다른 동구타 아이들과 함께 종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나는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나는 먹고 싶다” 등 내용이 적혀있다.

미국 NBC, 터키 아나돌루 에이전시 등은 누르-알라 자매의 사연과 영상을 기사화했다. 아나돌루 에이전시는 “시리아의 어린 자매는 트위터에서 동구타의 목소리가 되고 있다”며 “그들은 전쟁 상황에서 아이들이 직면한 고통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누르는 아나돌루 에이전시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먹을 것도, 물도, 약도 없다. 전투기가 학교를 공격하고 있어 오랫동안 학교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동생 알라는 “나는 사과와 바나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동구타에 살고 있는 15세 소년 무함마드 나짐이 2018년 2월 8일 폭격 당한 동구타 거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CNN은 지난 21일 나짐의 글과 영상을 보도하면서 “나짐은 대부분 15세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셀카를 찍고 SNS에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가 찍는 것은 다른 청소년과 다르다. 나짐은 시리아의 폭격과 폭력, 친구의 죽음을 찍는다”며 “그의 영상에는 공통적으로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일을 증언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영국 온라인 매체 아이뉴스(inews)는 지난 18일 나짐이 직접 쓴 글을 기사로 내보내기도 했다.

◇ “대학살” “전쟁범죄” 비난 쏟아져…유엔 안보리 ‘30일 휴전’ 추진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은 대학살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정부군은 동구타의 민가나 학교, 병원, 시장 등에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고 있다. 동구타의 한 의사는 19일 영국 가디언에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대학살을 목격하고 있다”며 “온갖 무기로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이 테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건 전쟁이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했다.

국제 사회에서 시리아의 대학살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은 지난 20일 “어떤 말로도 아이들의 고통과 우리의 분노를 표현할 수 없다”며 ‘백지 성명’을 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21일 동구타의 상황을 ‘지구 상의 지옥’이라고 표현하면서 “동구타의 모든 전쟁 행위를 즉시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니세프는 지난 20일 시리아 사태를 두고 ‘백지성명’을 냈다.

유엔 산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시리아 지역조정관인 파노스 뭄치스는 20일 성명을 내고 “병원인 줄 알면서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며 “동구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구타의 악몽을 이제 끝내야 한다”고 비난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시리아 정부가 고의로 자국민을 공격하는 노골적인 전쟁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르면 22일 시리아에서 ‘30일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은 이날 전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스웨덴과 쿠웨이트는 구호 물품 전달 등을 위한 ‘30일 휴전’을 제안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작성하고, 최대한 빨리 표결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안보리 이사국 중 러시아의 동의 여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는 8년째 이어진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동구타 사태를 안건으로 22일 유엔 안보리를 열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휴전 결의안 초안을 두고서는 “휴전은 복잡하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시리아 정부는 공격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시리아군 지휘관은 20일 “지금은 사전 공습 단계일 뿐, 지상군 작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군사작전 확대를 예고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