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가득한 색깔 띠, 작가가 쏟아낸 몸의 아우성
하태임의 드로잉, 갤러리 일호에서 2월 27일까지 전시
대상포진, 구안와사 이기고 뽑아낸 이토록 화사한 추상

하태임 작가가 여러 개의 캔버스를 놓고 색띠 작업을 하고 있다.

종로구 와룡동의 작은 화랑은 페인트 빌딩과 한복 주단 집들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네 평 남짓한 공간은 겨울 햇빛이 고여 따사로웠다. 유려한 색띠가 빛을 따라 출렁이며 공간 속으로 흘러들었다. 발색이 고운 색동저고리 고름이 공중에 잘린 채 떠 있는 듯했다. 왠지 이 화가는 피도 분홍색이나 노란색일 것만 같다. 10살 난 화가의 아들은 엄마의 공간에서 닌텐도 게임에 열중이었다.

“띠 하나를 그리는 데 3일이 걸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붓질을 올렸을 때는 전에 칠했던 것까지 벗겨지니 완벽하게 바르고 나서 그 위에 똑같은 행위를 반복합니다. 12번을 칠한 노란 색띠도 있어요. 한번 그은 색띠가 마르기까지 2~3시간이 걸리니 하루에 9시간을 작업한다고 해도 색을 서너 번 밖에 못 올려요.”

투명하고 맑은 색채의 간결한 추상은 힐링 효과를 준다.

하태임이 쉼표도 없이 말을 뽑아냈다. 색을 ‘칠한다’라고 하지 않고 ‘올린다'라고 표현한 게 특이했다. 색띠를 그릴 땐 캔버스에 팔을 쭉 펴서 그린다. 켜켜이 층층이 띠를 쌓기 위해, 그의 팔은 포물선을 그리며 춤추듯 색을 올렸을 것이다. 단세포 생물처럼, 그가 그린 색띠들은 고요하게 꿈틀거렸다.

“많이 아파요. 그림을 그리면. 내 육체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얼마 전까지 대상포진에, 구안와사에 오십견까지 온몸이 아팠다고 그가 격렬한 투병의 역사를 읊었다. 내용은 구슬픈데, 말하는 자의 용모가 눈부시도록 청량해서(한국적 이미지의 젊은 여성상으로 ‘샘이 깊은 물(1995년 6월호)’의 표지 모델로도 나왔다)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투병의 히스토리는 색띠 탄생의 히스토리와 겹쳐졌다.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그림은 엉덩이로 그리는 거라고. 그 말씀이 정말 맞아요. 나는 육체로 비단 실 뽑아내는 사람인가 봐(웃음).” 하태임은 화가 부부인 하인두와 류민자 선생의 딸이다.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파리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했고 홍대 미대에서 회화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잭슨 폴록의 뜨거운 액션 페인팅과 마크 로스코의 숭고한 색면 추상이 굽은 색띠의 탄생 설화가 되었다.

캔버스 앞에 서면 설명서 없이 부품을 조립하듯 찬찬히 색을 조립해간다. 붓질 행위에 중요한 건 투명성이다. “불투명하게 하려면 한 번에 칠하면 되지만, 그리 불투명하면 깊이감이 없고 틈새 공간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덧칠을 반복해요.” 무심한듯한 붓의 제스처, 반복된 굽은 등, 괴팍하지 않은 순한 색깔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분홍색,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노란색이 좋아요. 특히 노란색은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색이 아닌가 해요.”

붓의 거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드로잉.

한 개의 색깔이 그녀의 육체를 투과해 나갈 때마다, 몸은 낡아지는데 캔버스는 화사해진다. 아이러니다. 20여 년 동안 하태임은 22번의 국내외 개인전을 치르며 추상 작가로서 위상을 굳혔다.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모나코 현대 미술관, 태평양 아모레 뮤지엄 등 기관들의 소장품으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추상화의 장식성이 현대인의 생활 공간이나 색채 도시 조성에 요긴하게 활용되는 케이스들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복과 함께 협업 전시를 해도 좋을 듯하다. 이번 전시는 정교한 작품이 탄생하기 전의 모습을 공개하는 ‘드로잉 전'이다. 깨끗한 단면보다 즉석에서 흘러내리는 색물, 과슈의 투박함, 대나무 마디를 끊어낸 수묵화 같은 즉흥적인 검은 색띠들이 이채롭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갤러리 일호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