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地名 독점 사용은 안돼"
사리원, 신문에 나오는 北 도시
원심 "유명한 곳 아니면 가능해"

북한 황해도의 지명 ‘사리원’(沙里院)을 두고 서울과 대전의 식당이 벌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상표 명칭으로 ‘사리원'을 독점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서울 강남에서 ‘사리원불고기’를 운영하는 라모씨가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을 운영하는 김모씨를 상대로 낸 상호등록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특허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사리원 불고기.

황해북도 도청 소재지인 ‘사리원’은 불고기와 냉면 등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라씨는 사리원식 불고기를 팔던 외할머니로부터 1992년 가게를 물려받아 사리원불고기 식당을 차렸다. 만화 ‘식객’에 국내 대표 불고깃집으로 소개돼 유명해졌다. 대전의 사리원 면옥은 1951년 개업했으며 1996년 상표 등록을 마쳤다. 김씨는 증조할머니로부터 사리원면옥을 물려받아 운영하다가 2015년 라씨에게 “사리원불고기가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라씨는 특허심판원에 등록무효심판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라씨는 이미 전국적으로 ‘사리원'을 포함한 상호의 식당이 여럿 존재하며 북한 사리원 출신의 실향민과 자손이 상당히 존재하기에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공익에 반한다는 주장을 했다. 반면 김씨는 "분단 70년이 지난 만큼 사리원은 잘 알려진 지명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특허법원은 “사리원이 실제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에게 지리적 명칭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라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특허법원은 “인터넷 발달로 인해 다양한 정보 접근이 쉬워진 오늘날 ‘사리원' 명칭을 포함하는 음식점이 (식당을 운영하는) 각 지역에서는 어느정도 알려져 있고, 따라서 ‘사리원’을 특정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이 공익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초·중고 사회 교과서 등에 이런 점이 지속적으로 서술되거나 지도에 표기된 점, 사리원이 신문기사에 북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언급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명칭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리원이 조선 시대부터 유서 깊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며 “등록서비스표 중 ‘사리원’ 부분은 서비스표 등록 결정일인 1996년 당시를 기준으로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수요자 인식 조사는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등록결정일부터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 등록결정일 당시를 기준으로 일반 수요자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원심 판결은 지리적 명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