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당구장은 조폭 영화 속 단골 배경이었다. 백수나 건달들이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시간을 때우는 장소로 묘사되곤 했다. 요즘 국제규격 대대(大臺)를 갖춘 당구장은 프로 당구선수들이 땀 흘리는 훈련장이자, 진지하게 당구 실력을 연마하는 시니어들의 사교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프로 당구선수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고, 한국에서 수억원대 상금이 걸린 대회가 속속 개최돼 이른바 '세계 4대 당구천왕'도 매년 한국에 오고 있다. 당구 전문 채널과 인터넷 방송도 등장했다. 이 같은 당구의 위상 변화는 중장년층에게서 높은 호응을 얻으면서 당구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랭킹 15위 조재호(서울시청) 선수는 "10년 전만 해도 '당구 하겠다'고 하면 왠지 불량한 시선으로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며 "최근 들어선 동호인이 크게 늘고 각종 당구 대회가 TV로 생중계되니 먼저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제 당구가 돈이 되는 시대"라고 했다. 조재호 선수처럼 각 시·도 체육회에 소속된 이들이 수십명에 달하면서 당구로 연봉 받고 억대 상금도 챙기는 시대가 됐다.

세계캐롬당구연맹(UMB)이 승인한 톱 랭커가 모두 참가하는 국제대회 'LGU+컵 3쿠션 마스터스 대회'는 지난해 총상금 규모를 2억4000만원으로 늘렸다. 2015년엔 1억1000만원이었다. 종전 5000만원이었던 우승 상금도 8000만원으로 늘었다. 오는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매크리 3C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는 총상금 60만8000달러(약 6억6000만원), 우승상금 15만달러(1억6000만원)로 세계 당구 사상 최대 규모다. 상위권 12명이 초청된 이 대회에 우리나라 김행직(세계 랭킹 5위, 2017 월드컵 우승자)과 최성원(세계 랭킹 12위, 2014 세계선수권 우승자)이 명단에 올랐다. 최성원은 2015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었다.

당구전문 채널 빌리어즈TV나 인터넷 당구 전문 방송국 코줌코리아 등이 속속 선보이면서 중장년층의 호응도 높아지고 있다.

빌리어즈TV가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코리아 당구왕' 4구 부문의 경우 50~60대 참가자가 전체의 45%에 달한다. 주요 시청층도 50~60대다. 서울당구연맹 유진희 수석부회장은 "'4대 천왕'이라고 부르는 세계적 선수들의 경기를 하루 종일 볼 수 있어 당구가 고도의 훈련과 정신력이 필요한 스포츠로 인정받게 됐다"면서 "과거 '시간 때우는 장소' 이미지 때문에 발길을 돌렸던 동호인이 많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수 빌리어즈TV대표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각종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고 인기를 끌면서 당구의 전통적인 룰과 매너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며 "요즘 당구장에 가보면 동호인들도 개인 큐를 가지고 와서 뱅킹(초구를 정하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확실히 당구가 신사들의 스포츠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구 세대'로 불리는 40대 후반~60대는 당시 출생아 수가 80만~102만명에 달할 만큼 많아 제2의 당구 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는 해석이다.

코줌코리아 오성규 대표는 "당구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의 숫자가 10년 전보다 수십 배 이상 늘어 콘텐츠를 더 많이 제작해달라는 요청도 동시에 늘고 있다"며 "국내 당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 당구 콘텐츠를 수입하겠다는 외국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