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올림픽이 한창이라 동계 스포츠 사진 얘기를 해보자. 선수들의 우람한 근육과 살 위에 맺히는 땀까지 보이는 하계 종목들과 달리 동계올림픽 선수들은 유니폼과 모자, 헬멧 등으로 온 몸을 꼭꼭 숨긴다.

추위와 싸워온 인류의 겨울놀이 문화에서 유래된 동계 스포츠는 그 대신에 선수들이 울긋불긋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얼음이나 눈처럼 하얀 배경 위를 달린다. 흰 도화지 위에 화려한 원색 물감을 풀어쓰듯 동계 스포츠 사진은 그림을 만들기가 더없이 좋다.

하지만 스포츠 전문 사진기자들도 동계 종목에선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초긴장 상태에서 촬영해야 한다. 빙판(氷板)이든 설원(雪原)이든 엄청나게 빠른 선수들의 속도 때문이다.

이상화 선수가 출전한 500m 스피드 스케이팅은 400m 빙상 트랙을 한 번 돌고 조금 더 가기 때문에 코너를 돌 때 거의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스키 점프나 알파인 스키도 고정된 지점을 찾아 선수가 눈으로 보이기 전부터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허공만 찍다 끝난다.

커피 종이컵 뚜껑만 한 아이스하키 퍽은 워낙 빨라서 카메라 파인더에서 자주 벗어난다. 아이스하키는 찍다가 퍽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게 일이다. 루지나 스켈레톤도 트랙 위로 썰매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이들은 다른 빙상 종목들보다도 더 빨라서 셔터 타임 1000분의 1초 이상을 연사(連寫)로 갈겨야 겨우 앵글에 잡힌다.

일러스트=이철원

우리나라 주종목인 쇼트트랙은 선수들이 갑자기 엉켜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등 변수가 많아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2002년 솔트레이크올림픽 때 쇼트트랙 1000m 결승선에서 중국 리자준이 넘어지면서 같이 들어오던 한국의 안현수와 미국 안톤 오노가 한꺼번에 뒤엉켜 넘어졌다. 현장에 있던 기자는 잠깐 카메라를 놨다가 사고(事故) 순간을 눈으로만 찍었다. 처음 갔던 동계올림픽에서 물을 먹은 아픈 추억이었다.

한편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행사는 사진과 영상 중계에서 새로운 앵글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카메라나 방송 장비 회사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개발한 최신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9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남자 피겨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나온 차준환이 점프를 하자 경기장에 설치된 100대의 초고화질 카메라가 일제히 이 모습을 찍었다. TV에선 점프한 차준환의 모습을 한 바퀴를 빙 돌려가며 보여줬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찍어서 사진을 이어붙이는 기술로 눈 깜짝할 순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라고 부르는 디지털 합성 촬영 기술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와 유명해졌다. 쇼트트랙과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도 나오는데 이번 평창올림픽 중계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주요 선수들의 봅슬레이 앞에는 200g짜리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되어 영상의 실시간(實時間) 전송을 통해 마치 시속 140km 속도의 봅슬레이를 탄 것처럼 보이는 실감 영상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번 올림픽에 처음 시도됐다. 모두 초고속 통신 환경에서 고화질 이미지를 전송하는 신기술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직접 들지 않고 무선동조기를 설치해서 촬영하는 사진도 동계 스포츠에서 자주 나온다. 아이스하키 골대 안엔 광각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설치되어 슈팅을 할 때마다 원격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사전(事前)에 제작한 아크릴 박스 안에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수백 번의 시도에서 제대로 된 장면이 한 번 나올까 말까 하지만, 제대로 한 장이 걸리면 어디에도 없는 역동적인 스포츠 사진이 나온다.

농구의 레이업슛이나 축구의 골대 뒤 골인 장면 사진도 같은 방법으로 무선동조기를 설치해 찍는다. 평창에선 빙상 경기장 천장에도 카메라가 장착돼 로봇 팔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사진기자는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버튼을 누르며 촬영한다.

그렇지만 스포츠 사진의 진짜 매력은 새로운 앵글보다 선수와 관중이 만들어내는 기쁨과 좌절, 감동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기자가 오래전 보았던 최고의 스포츠 사진은 미식축구 경기에서 패배해 운동장에 쓰러져 고개 숙인 선수에게 다가가 안아주는 치어리더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기는 선수만 있는 게 스포츠가 아니다. 우리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