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이 올 들어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는 것도 대북 제재를 피하거나 수위를 낮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집권 후 대외 무역과 시장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고강도 제재가 이어지자 북의 수출입 길이 막히고 외화 부족도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의 통치 자금과 권력층의 수입이 급감한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생명선인 장마당까지 조만간 영향권에 들어가리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대북 제재 효과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당시엔 "북한이 사회주의 폐쇄 경제라 제재해도 소용없다"거나 "안보리 제재는 대량 살상 무기(WMD) 관련 품목에만 국한돼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장마당 발달과 시장화 진전으로 북한에 사실상 '준(準)자본주의'가 출현하고 있다. 무역 의존도는 2010년 이후 크게 높아져 현재 50%에 육박한다. 전 세계 평균이 60% 정도다. 북의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는 90%가 넘는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5·24 대북 제재로 대남 농·수산물 판매가 막힌 북한이 중국에 석탄·철광석 판매를 급격히 늘린 결과"라고 했다.

김정은 집권 전(2011년) 200여 곳이었던 장마당은 현재 400곳이 넘는다. 중국에서 수입한 물품이 장마당 매대에 오르고, 수출로 번 달러·위안화가 장마당의 '실탄'이 돼준 것이다. 이제는 장마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무역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대량 살상 무기 중심에서 무역 제재로 완전히 바뀌었다. 2016년 3월 유엔 결의 2270호로 민생 목적 외의 북한산 석탄·철·철광석은 수입이 금지됐다. 북한산 석탄 수입 전면 금지(2321호), 북한산 지하자원·수산물 수입 금지(2371호), 북한산 섬유 수입 금지와 대북 석유 수출 제한(2375호), 해외 노동자 24개월 내 송환(2379호) 조치도 이어졌다. '경제 봉쇄 수준'에 이른 것이다.

중국의 달라진 태도도 북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과거 제재에 뜨뜻미지근하던 중국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안보리 결의를 비교적 충실히 이행 중이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 분석에 따르면, 작년 북한의 대중 수출은 37% 감소했으며, 제재가 완전히 작동하면 올해는 90% 이상 급감할 전망이다.

수출이 급감하자 북한의 각 기관·단체가 산하 무역 회사를 통해 김정은에게 상납하는 '충성 자금'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수출로 막대한 돈을 챙겨온 권력층의 생활이 빠듯해졌다"며 "북한이 연초부터 파상적 대남 평화 공세로 전환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류 공급 중단으로 가격이 급등하고, 전기 공급도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의 파도가 올해는 주민들의 젖줄인 장마당까지 미칠 것"이란 말이 나온다. 김병연 교수는 "최근 수출 감소로 구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올해부턴 수입 물량도 줄어들 것"이라며 "안보리 제재가 북 장마당에 대해선 '지연된 폭탄(delayed bomb)'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지금 대북 제재의 고삐를 바짝 조이면 북한의 셈법을 바꿀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