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빙속의 기대주 김민석(19)의 발은 볼이 넓고 발등이 두껍다. 주위에선 타고난 '장사(壯士)의 발'이라며 단거리를 권유했지만, 김민석은 중장거리를 고집했다. 이유는 "단거리는 스타트가 나쁘면 그걸로 끝이지만, 중장거리는 후반부에 승부를 뒤집을 수 있어 더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중 김민석이 가장 애착을 보인 종목이 스스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불렀던 1500m다. 남자 1500m는 김민석이 13일 평창에서 동메달을 따내기 전까지 아시아 선수들이 단 한 번도 메달을 걸어본 적이 없는 종목이었다.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스피드스케이팅 1500m는 단거리 선수의 힘과 순발력, 장거리 선수의 지구력을 겸비해야 하는 종목"이라며 "그런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을 건 것은 동계 스포츠 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네덜란드 취재진도 김민석에게 1500m 동메달의 의미를 물었다. 김민석은 "아시아 선수들이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내서 기쁘다"며 "운동선수로서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13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레이스를 마치고 다른 선수들의 결과를 기다리던 김민석이 동메달을 확정짓자 환호하고 있다. 그는 대표팀 맏형 이승훈 등과 호흡을 맞추는 팀추월 종목에서도 메달을 노린다.

이날 18개 조 중 15조로 출발한 김민석은 1분44초93의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 뒷조 경기를 기다렸다. 이강석 KBS 해설위원은 "16조의 알란 다흘 요한슨이 레이스 도중 넘어지며 얼음이 파였고, 이를 정빙하느라 5분여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17·18조 선수들의 리듬이 깨진 것도 김민석의 동메달 획득에 도움이 됐다"고 봤다.

김민석은 팬들에게 낯선 선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승부 근성을 보여 '될성부른 떡잎'으로 통했다. 초등학생 시절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병행한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선 1위를 놓쳐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김남수(55)씨는 "그런데도 민석이는 쇼트트랙 성적이 안 좋다고 울곤 했다"며 "결국은 노력 끝에 6학년 때 쇼트트랙 전국 대회 MVP가 됐고, 이후론 미련 없이 스피드스케이팅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2014년 만 15세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된 김민석은 작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김민석이 이날 올림픽 동메달을 따자 많은 네티즌이 "19세에 병역 특례를 받았다"며 축하했으나, 실제론 이미 18세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대상자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김민석은 올림픽을 앞두고 고비를 만났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강한 체력 훈련을 소화하느라 허벅지 근육이 세 번이나 파열됐다. 작년 가을엔 올림픽 5000m에 도전하려고 무리하게 7㎏을 감량했다가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김민석은 1500m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3㎏을 늘렸고, 고된 훈련의 결실을 이번 올림픽 동메달로 맺었다.

김민석이 이번 달 졸업한 평촌고 빙상부의 이규찬 교사는 "민석이가 체중을 한창 감량할 당시 하루 2~3차례 훈련을 하면서도 샌드위치와 초콜릿 하나로 버텼다"며 "살을 못 빼는 후배들에겐 '의지가 없으면 운동할 필요가 없다'고 따끔하게 말할 정도로 프로 의식이 투철한 아이"라고 했다.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그는 빙상부에서 '멘털 갑(甲)'으로 통했다.

김민석이 습관처럼 자주 하는 말은 "(네덜란드) 크라머르와 붙어 이기고 싶다"는 것이다. 김민석과 이승훈·정재원이 호흡을 맞추는 한국 팀추월은 크라머르가 이끄는 네덜란드와 메달을 다툴 전망이다. 팀추월 예선은 18일, 결승은 2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