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의 얼굴이자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샘터 사옥이 새 단장을 마쳤다.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와 수익을 함께 추구한다는 목표를 내건 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로 작년 말 주인이 바뀌고, 대안학교·도서관, 스타트업 공유 사무실 같은 새 입주자가 들어왔다. '공공일호'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새 단장'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얼핏 보면 변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은 붉은 벽돌 그대로다. 내부도 새 용도에 맞게 최소한만 바꿨다. 안 바뀐 듯 바뀐 이 변화를 주도한 이는 건축가 조재원(48·공일스튜디오 대표)씨다. 서울 성수동의 공유 사무실 '카우앤독' 등을 설계한 젊은 건축가다. 최근 이 건물에서 만난 조씨는 "복원 불가능한 방향으로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재원씨가 대학로 ‘공공일호’(옛 샘터 사옥) 5층 ‘오픈 라운지’에서 1979년 도면을 펼쳐보였다. 리노베이션하기 전 직원 식당이 있던 자리다.

공간의 물리적 변화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작지 않다. 건물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공개하는 작업을 공사와 함께 진행했기 때문이다. 건물을 바꿀 줄만 알지 관련된 자료를 아카이브화하는 작업엔 공들이지 않는 국내에서 돋보이는 시도다.

우선 1979년 신축 이후 주요 증·개축 도면을 공공그라운드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누구나 내려받도록 했다. 층별 입주 시설의 변화를 정리하고 이번 공사 과정도 500여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조씨는 "오래된 도면, 회의록, 스케치 등 사과 상자 2개 분량의 자료를 빠짐없이 읽고 이해한 내용을 최대한 공유했다"고 했다.

원래 직원 식당이었던 지하 1층에 1984년 샘터파랑새극장이 생기고, 2000년 지상 1층에 들어온 핫도그 가게가 2003년에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나온다. "여기서 연극을 봤던 분들은 극장이 없어진 걸 알면 섭섭하겠죠. 하지만 극장 자리도 처음엔 식당이었고 앞으로는 또 다르게 쓰일 거라는 전후 사정까지 알면 서운함이 줄어들 거예요." 애착을 가진 공간이 아무 설명 없이 사라져버릴 때 느끼는 상실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태를 향한 반기다.

조씨는 "현대 건축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기록이 중요하다"고 했다. 도시화와 함께 등장한 건물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사라지거나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샘터 사옥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보행자들을 위해 1층에 통로를 낸 건물이에요. 건물의 그런 '격(格)'을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걸 자료를 보며 느꼈죠. 이번에도 그런 개방성과 공공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딱 한 군데 허문 곳이 있다. 계단실 안쪽 벽돌 벽을 개방적인 유리 벽으로 바꿨다. 건물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는 시도다. 조씨는 "많이 망설였지만, 누군가 지적한다면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건축가가 마음대로 없애버리고 아무도 얘기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논쟁이 낫지 않으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