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둑 대표팀인 '고고재팬(GO碁JAPAN)'은 현 감독인 야마시로 히로시(山城宏·60) 9단의 제안으로 2013년 출범했다. 대표팀 창단식 때 "국제 대회서 성적이 부진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9단이 지난주 끝난 22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기사가 세계 메이저 결승에 나간 것은 11년여 만이었다. '고고재팬'을 6년째 이끌고 있는 야마시로 감독을 대회 기간 중 일본기원에서 만났다.

일본 바둑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소견을 밝히고 있는 야마시로 일본 대표팀 감독. 14세에 프로가 돼 왕관전서 15회 우승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한게임

야마시로 감독은 "아직도 부족하지만 1차적 성과가 나온 셈이어서 보람을 느낀다. 대표팀 창설 이후 국제기전의 비중이 높아졌다. LG배 준결승·결승전을 일본에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효과 중 하나였다. 이야마 본인의 국제 무대 출전 의욕까지 어우러져 한 발짝 진보했다"고 분석했다.

'고고재팬' 멤버는 25명 안팎. 해마다 4월 일부를 교체한다. 하지만 한국·중국처럼 성적에 의한 승강(昇降)이 아닌 상금 랭킹 기준이다. 코칭 스태프 회의를 통해 2~3명을 추가 선발한다.

야마시로 감독은 "일본 바둑계는 한·중과 달리 유명 기사가 젊은 후배를 불러 모아놓고 공부하는 연구회 중심 시스템"이라며, 그들을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대표팀 역할이라고 밝혔다.

유망주 그룹인 육성군(남자 18세·여자 20세 이하) 훈련은 대표팀에 비해 훨씬 엄하다. A, B 2개 조로 나누어 리그전을 갖고, 성적 우수자에게 각종 혜택을 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한다. 야마시로 감독은 시바노 도라마루(芝野虎丸) 7단을 가장 성공적인 육성 사례로 꼽았다. 만 18세인 시바노는 이미 신인왕전 등 2관에 올랐으며 지난해 8할대(39승 9패)의 놀라운 승률을 올렸다.

일본의 대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딥젠고'도 '고고재팬'의 주요 학습 대상이다. 대표 선수와 육성군 구분 없이 '딥젠고'와 수시로 대국하고, 매달 한 차례 모임 때 대국 내용을 함께 분석한다. 젊은 기사들이 특히 열성적으로 소감을 발표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야마시로 감독은 세계 바둑의 중심지이던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추락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일본이 약해졌다기보다는 한·중이 세졌기 때문"이라며 "당분간은 중국과 한국의 우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바둑 대표팀은 한·중과 달리 국가 지원이 없다. 대신 팬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합숙 훈련, 해외 예선 출전비 일부를 충당한다. 랭킹 제도도 3국 중 유일하게 일본에만 없다.

"선수들이 모여 하나가 되고 젊은 유망주들을 재목으로 키워내는 것, 이 두 가지가 대표팀 창설 당시 지향점이었는데 웬만큼 달성됐다고 생각한다. 대표팀과 사설 도장(道場)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되 궁극적으로 도장을 넘어 대표팀이 주도하는 체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야마시로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감독을 모셔올 수도 있다"고 웃지도 않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