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 중인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저녁 개막 리셉션장에 늦게 왔다가 5분 만에 퇴장했다. 북한 대표단과 같이할 수 없다는 강한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애초에 북한 대표단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펜스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아베 총리,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함께 헤드 테이블에 배치했고 이를 기자단에 공개했다.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과 마주 앉는 위치였다.

펜스 부통령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핵 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핵을 지키려는 전술이고 한국 정부를 그 목적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북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다른 대화라도 이어가면 혹시 북이 바뀌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한다. 미국은 이런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고 북한에 이용당할 뿐이라고 본다. 그러니 속셈이 뻔한 김영남과 마주 앉아 미국이 북의 전술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리셉션 헤드테이블에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전제로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세계의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소중한 출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 자리에 앉은 북한은 핵을 지키겠다는 생각뿐이고 미국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원칙뿐이다. 북이 비핵화에 동의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잠시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게 지금 한반도 현실이다.

남·북·미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이 상황의 한반도 정세는 너무 어지럽다. 이날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김영남 등과 함께 입국했다. 이들을 맞기 위해 정부는 통일부 장관과 차관에 청와대 NSC 안보실 2차장까지 나갔다. 바로 그 시각에 펜스 부통령은 두 동강 난 천안함을 찾았다. 탈북자 지성호씨,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오토 웜비어 부친 등과 함께였다. 전날 평양에선 미국을 공격할 ICBM이 등장하고 강릉에선 북 악단이 쇼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 대북 제재와 봉쇄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흘러가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붙들고 미국 공세의 방패로 삼으려는 전략을 집요하게 추구할 것이다. 김여정이 그런 메시지를 들고 왔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북핵 포기 그날까지 최대한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고 펜스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 당연한 말을 김여정을 통해 김정은에게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