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중·고교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 분량은 현재 학생들이 공부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집필자들을 세세하게 간섭하지 말자는 취지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시안대로라면 집필자가 '천안함 폭침'과 같은 북한 도발 사건을 빼거나, 북한 토지 개혁의 긍정적 부분만 부각해도 정부는 바로잡을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 만든 2009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 집필 기준은 기존 교과서들의 좌편향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집필자들이 명확한 지침조차 지키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했다. 예컨대, 당시 집필 기준에 '북한의 세습 체제 및 경제 정책의 실패를 서술한다'고 해 놓아도, 두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은 '북한 천리마 운동'의 긍정적 부분만 서술해 수정 권고를 받았다. 또 여섯 교과서는 북한 토지 개혁의 긍정적 부분인 무상 몰수, 무상 분배만 강조하고, 한계는 서술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 교과서는 '유엔 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사실에 유의하라'는 집필 기준이 있었는데도 '대한민국을 38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기술해 논란이 됐다. 또 2009 집필 기준에 '북한의 도발 등으로 남북 갈등이 반복되었으며'라고 해 놓았지만 다섯 교과서는 '천안함 폭침'을 아예 서술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런 사례를 포함해 2014년 집필 기준을 어긴 교과서 8종에 총 2250건을 수정·보완하라고 권고·명령했다. 당시 교육부가 집필 기준을 근거로 수정·보완을 권고했는데도 일부 교과서 집필진이 받아들이지 않아 3년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부는 "집필 기준이 세세하지 않아도 검정 심사 과정에서 바로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 검정 교과서 심사에 참여한 한 학자는 "검정 심사 과정에서는 '집필 기준'을 근거로 살펴보고, 집필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문제 삼기가 어렵다"면서 "집필 기준에도 없는데 '넣어라' '빼라' '고쳐라' 하면 어떤 집필진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밝혔다.